[까1] 악한 표도르, 아내 재산을 가로채다

2021. 5. 19. 13:13고전 읽기

** 오늘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시간 나는 대로 천천히 다시 읽으며 곱씹어 보려 합니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생애 말년인 삼 년 동안(1878~1880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썼습니다. 그는 소설 첫머리에 '작가에게서'라는 짤막한 서문을 달아 놓았습니다. 이 글에서 작가는 표도르 바쁠 로비치 카라마조프(표도르)의 셋째 아들 알렉세이 표도로비치('알료샤')가 작품의 주인공임을 밝힙니다. 이어 알로샤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고 '애매모호한 주인공'이며 '괴짜'이고 괴팍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라 덧붙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왜 굳이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서문에서 밝히고 시작하였을까요? 그는 그 이유를 '독자에 대한 예의'이자 '무언가를 예고해 두려는 교활함 때문'이라 말합니다. 말하자면 작가는 주인공이 그다지 뛰어난 인물이 아님에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예고하고서 소설을 시작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을 굳이 작가의 주장에 따라 '알료샤'로 설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독자는 자신이 원한다면 아버지 표도르나 큰아들, 둘째 아들 이반, 넷째 아들 스메르쟈꼬프, 그것도 아니면 글루센카(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 스베뜰로바)나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베르호프쩨바(까쨔), 조시마 장로 같은 인물 중 한 사람을 주인공이라 여기고 이 소설을 읽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소설의 다른 면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겁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인물은 카라마조프가의 아버지인 표도르입니다. 그는 비록 '지주' 신분이긴 하였으나 무일푼으로 남의 집 '식객' 노릇이나 하던 보잘것없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작가에 따르면 표도르는 "생활이 문란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으나 "재산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히 일 처리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결혼 전까지 무일푼이던 표도르는 죽을 때 무려 10만 루블을 남겼다고 합니다. 당시 시골 교사 월급이 23루블이었다고 하니 10만 루블이면 지금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족히 수십 억 원은 될 겁니다.

 

표도르는 부유하고 명망 있던 귀족 가문의 아제라이다 이바노브나 미우소바와 '도둑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 결혼은 표도르가 주도한 게 아니고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 사상에 따라 "여성의 독립을 선언하고 사회적 조건이나 친인척과 가족의 횡포에 맞서고 싶었던" 아가씨 '아젤라이다'의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아젤라이다는 표도르에 대해 "비록 남의 집 식객이긴 해도 모든 가능성을 향해 질주하는 그 시대의 가장 용감하고 냉소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었음이 결혼 이후 금세 드러나고 맙니다.

 

표도르의 관심은 오로지 아내의 결혼 지참금과 집안의 재산뿐이었습니다. 그는 아내가 상속받은 2만 5천 루블을 빼돌렸고, "지참금으로 물려받은 작은 마을과 도회지의 집 한 채, 조그만 영지"도 자신의 명의로 변경하려 온갖 수작을 부렸습니다. 아내는 불행한 결혼 생활에 더 견딜 수 없게 되자 큰아들 미쨔(드미뜨리)를 낳고는 "가난한 신학교 출신 교사"와 함께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뒤 페테르부르크에서 '완전한 해방을 만끽'하다가 어느 다락방에서 '장티푸스' 혹은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표도르는 처가에서 아내의 소식을 전해 듣고는 "두 손을 하늘을 향해 치켜 올리고는 '이젠 해방이다!'"라고 소리쳤고, "남들이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 어린아이처럼 통곡"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내의 족쇄에서 해방되어 엄청난 재산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기쁨과 머나먼 땅으로 도망쳐 갑작스레 객사한 아내를 위해 통곡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이듯이 "비록 악당일지라도 우리의 일반적 결론보다는 한결 순박하고 단순한 일면을 지닌 법"이라 말합니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 표도르는 악당임에 틀림없지만, 그에게는 '단순하고 순박한' 일면을 보여줍니다.

그는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인 아가씨와 결혼한 뒤 막대한 재산을 가로채 '졸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는 어릿광대 성품은 바꿀 수 없었고 자녀들에 대한 무관심과 재물과 여자에 대한 탐닉도 계속되었습니다. 표도르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는 신분상 '지주'였으나 몰락한 가문 출신으로 보이고 남의 집 식객 노릇을 하며 온갖 수모를 겪어야 하였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 오로지 '재물'만이 자신의 불안하고 불행한 처지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의 호색한 기질도 진정한 사랑을 맛보지 못한 채 자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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