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전달 수단

2023. 1. 18. 13:34고전 읽기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친구이자 승려인 고빈다와 강가 오두막에서 만났다.

고빈다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구도자로 사는 중이었다.

그는 싯다르타에게서 자신의 스승 고타마(붓다)와 비슷한 기운을 느낀다.

그리하여 이것저것 묻는다.

다시 길을 떠나기 전 고빈다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싯다르타, 나의 길을 떠나기 전에 자네한테 한 가지 묻는 것을 허락해 주게. 자네는 어떤 교리를 갖고 있지? 자네가 추종하는 어떤 믿음이나 지식이 있나? 자네가 살아가는 데, 올바로 행동하는 데 도움을 주는 믿음이나 지식을 갖고 있느냐 말이야?"

 

싯다르타는 고타마, 아리따운 기생, 한 부유한 상인, 몇몇 주사위 노름꾼, 승려 고다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스승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스승은 뱃사공 바주데바라는 사람이었고 그는 사상가는 아니지만 고타마에 못지 않게 필연의 이치를 깨달았으며 완성된 자이자 성자였다고 말한다. 

 

이어 싯다르타는 말한다.

 

"나는 가금씩, 한 시간 정도 아니면 하루 정도, 마치 사람들이 가슴 속에 생명이 고동치는 것을 느끼듯이, 나의 가슴속에서 지식이 살아 있음을 느끼곤 한 적 있었네. 그것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었지. 그러나 그것들을 자네에게 전달하기란 나로서는 힘든 일일 것 같네. 이보게, 고빈다, 내가 얻은 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205-206쪽)

 

노자도 <도덕경>(41장)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어리석은 사람이 비웃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다"(下士는 聞 道에 大笑之하나니 不笑면 不足以爲道이니라)고 말한다. 성서 창세기에는 소돔성에 살던 롯의 사위들이 나온다. 그들은 장인이 "이 성은 곧 멸망할 터이니 속히 빠져 나가야 한다"고 말하자, 농담하는 줄 알고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소돔성이 불과 유황으로 멸망할 때 함께 죽고 말았다. 도(道), 진리, 지혜... 그 무엇이라 칭하든간에 궁극적 이치를 가르치면 어리석은 자들은 '바보 같은 소리'나 '농담'처럼 여기게 마련이다. 

 

싯다르타는 '지혜'는 말로 전달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작가 헤세의 생각이다. 그도 데리다가 해체하려 했던 서구의 '음성중심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헤세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 몸짓, 표정 따위가 더 많은 가르침과 지혜를 준다고 본다. 꼭 그렇진 않을 거다. 내 생각에는 무언의 행동과 표정도 지혜를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지혜로운 말'도 지혜를 건네는 수단이다. 헤세가 <싯다르타>에서 서술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다"는 주장도 결국 '말'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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