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오만

2024. 6. 18. 23:03책 읽기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치 혼자 산꼭대기에 서서 아래쪽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웅크려 앉은 까마귀처럼 보여서 내가 높고, 귀하고,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멀리서 사람을 보며 '까마귀 떼가 땅에 있구나'라고 말할 때, 남들 또한 멀리서 나를 보며 '까마귀 한 마리가 산에 있네'라고 말하는 줄은 알지 못한다.

傲者, 以爲異於人, 如自立山頂, 視其下, 如蹲烏也, 以爲我高矣貴矣異矣, 不知我遠視人, '謂衆烏在地', 人亦遠視我, '謂一烏在山'.(<칠극七剋>(판토하 지음/정민 옮김, 김영사, 2024), 57쪽. 

 

 

 

 

  16세기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파송 중국선교사 판토하(Diego de pantoja, 중국 이름 방적아龐滴我, 1571~1618)가 쓴 <칠극七剋>의 한 대목입니다. 판토하는 마테오 릿치와 함께 중국 북경에서 활동하며 기독교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북경에서 17년 간 살면서 중국의 지리, 문화, 역사를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마테오 릿치도 그러하였지만, 판토하도 중국 문화를 존중하면서 조심스레 기독교를 전하는 '적응주의적 선교'를 펼쳤습니다. 

 

그 대표적 결실 중 하나가 <칠극 七剋>이라는 그의 작품입니다. 이 책은 천주교가 일곱 가지 으뜸가는 죄악인 교만, 질투, 인색, 분노, 식탐, 음란, 불선을 이기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판토하의 글을 보면 그는 기독교 교부들(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리오, 히에로니무스, 베르나르도)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철학자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등의 수많은 격언뿐만 아니라 중국 고전의 가르침도 두루 인용합니다. 

 

이는 그가 중국 지식층에게 기독교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 얼마나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는지를 알려 줍니다. 적어도 그는 중국 고전을 섭렵하였고 그것을 활용해 한자로 글을 쓰는 실력을 연마한 선교사였습니다. 당대에 동서양을 아우르는 이 정도의 학식을 갖춘 이는 매우 드물었을 것입니다. 판토하는 중국에 서양 문물을 소개하고 스페인을 비롯한 서구에는 중국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의 <칠극>을 읽다 보니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나 동방정교회의 <필로칼리아> 같은 영성 서적에 견주어 볼때 더욱 짜임새 있고 설득력도 높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동아시아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작품이라서 그러기도 하겠지만, 정민 선생의 깔끔한 번역도 크게 한 몫한 것으로 보입니다. <칠극>은 18세기에 조선에도 전해져 이익, 정약용, 정약전, 사도세자 등 조선 지식인들에게 '서학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판토하는 첫번째 으뜸 죄악인 '교만'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다루면서 '오만한 까마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까마귀는 중국에서 효도를 상징하는 새이기도 하지만, 불길함과 어둠을 상징하는 부정적 의미도 강한 새입니다. 중국은 예부터 전쟁이 잦았던 나라라 까마귀를 썩 좋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판토하는 그런 정서를 꿰뚫어 보았던지 '까마귀'를 내세워 '교만'한 시선에 대해 경고합니다. 내가 남들을 깔보면 다른 사람들도 역시 나를 그렇게 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어른들은 "언덕은 내려봐도 사람은 내려 보지 마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무리 잘난 자라 해봐야 별 거 없습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그도 못난 구석이 틀림없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시시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뛰어난 게 있습니다. '교만'은 자신도 다른 사람도 잘 모르기에 생겨나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자신을 하찮게 여겨서도 안 되지만 남들과 다른 특별하고 귀하고 뛰어난 존재라 착각하며 으스대진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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