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좀도둑 A와 동네 사람들의 집단 구타

2024. 8. 27. 15:08사람들


A씨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칠십이 조금 넘은 나이였을 거다. 사망 원인은 모른다. 몇 다리 건네 들은 소식이니까. 

 

어머니는 A씨가 소년이던 때 보신 장면을 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어느 날 온 동네 사람이 모여 소년 A를 나무에 묶어 놓고 한창 때리는 중이었다. 마을 이장을 필두로 남정네들이 돌아가며 A를 마구 때렸다고 한다. 

“말해, 또 누구네 집에 가서 무얼 훔쳐 먹었냐?”

“요놈 봐라, 말 안 해? 말 헐 때까지 뚜드려야 말 헐래?”

이런 식었단다. 소년 A는 더 맞지 않으려고 미주알고주알 자신이 훔쳐 먹은 일들을 열거하였다. 

“얼마 전에는 아무개네 집 부엌에 들어가 식혜를 훔쳐 먹었고, 달포 전에는 또 아무개네 집에서 고구마를 훔쳐 먹었고, 두 달 전에는 땅콩을 훔쳐 먹었고....”

끔찍한 장면이었다. 마침 우리 아버지는 멀리 다른 마을에 발동기를 고쳐 주러 가시고 없었다. 어머니는 소년 A가 동네 사람들에게 얻어맞는 모습을 멀찍이서 보셨는데 너무 불쌍하고 가슴 아팠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새댁인 주제에 나서서 뜯어 말릴 수도 없었다. 

그때 일을 떠올리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어린 것이 오죽 배가 고팠으면 남의 집 부엌을 다니며 무얼 훔쳐 먹었겠냐?”

“그런 사실을 알았으면 마을 이장이 나서서 그 집을 좀 도울 방법을 찾아 볼 일이지, 어른이란 것들이 그 어린 아이를 나무에 묶어 놓고 돌아가며 때렸으니....”

그 장면은 상상만 해도 소름끼친다. 다행히 A씨는 잘 풀렸다. 청소년 시절 4H 사무소에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군수 눈에 들었는지 그 덕으로 공무원이 되었다. 군청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였을 거다. 하지만 그는 고향 사람들에게 당한 그때 일을 평생 잊지 못하였을 거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으론 A씨는 공무원이 된 뒤에도 고향에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모친이 우리 집을 수시로 찾아오셨다. 집이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집들에는 가지 않으면서도 유독 우리 집에는 마실을 자주 오셨다. 어릴 때 그 할매가 우리 집에 오시는 게 너무 싫었다. 

주로 우리 아침밥을 먹는 시간에 오셔서 서서 침 튀겨 가며 큰소리로 남 험담을 하시곤 했기 때문이다. 그 할매는 자신 집 근처 개울가에 있던 작은 샘에서 물을 길으면서도 실성한 듯 큰소리로 누군가의 욕을 뇌까려대곤 하였다. 

그런 할매가 우리 집에 찾아와 아침 식사 분위기를 망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기묘하게도 그 할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하고 식사를 대접하곤 하셨다. 우리 형제들이 “그 욕쟁이 할매, 제발 우리 집에 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면 아버지는 “불쌍하잖냐?”고 한 마디 하시곤 했을 뿐이다. 

불과 몇 년 전에야 욕쟁이 할매 사연을 부모님께 들었다. 그 분은 장성 한재골로 시집 온 뒤에 군인들 밥을 해 주는 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A씨 부친에게 겁탈을 당하셨고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그 일로 본 남편과는 살 수 없었고 그 동네에 눌러 앉아 아들 A를 낳아 기르며 산 거였다. 

A씨 부친은 마을 훈장이었다고 한다. 그가 마을 아이들의 글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어떻게 사망하였는지는 모른다. A씨가 어릴 때 그의 부친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던 걸로 보인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A의 부친이 동네 아이들 무료로 글을 다 가르쳤다. 그 은덕이 어디 가겠냐? A가 너무 가난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데 면서기가 된 건 다 하나님이 보살피셨기 때문이다”

욕쟁이 할매는 자신 아들이 온 동네 사람에게 얻어맞은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을 거다. 더욱이 그 할매는 겁탈을 당해 본 남편과 살지도 못한 채 홀로 A를 기르며 평생 살아야 하였다. 그 한 맺힌 세월을 떠올리면 욕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지 않고 어찌 그 동네에서 살 수 있었을까. 


욕쟁이 할매가 우리 집을 자주 찾아온 까닭은 무엇일까? 내 부모님이 그분을 따뜻하게 대해 주신 사실도 물론 한몫했을 거다. 하지만 그보다는 집단 구타 사건 당일에 내 부친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아들을 때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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