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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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청보리밭
청보리밭, 이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 되었습니다.제가 어릴 적만 해도 으레 다들 보리를 심었지요. 마을마다 초록빛 보리밭이 출렁였습니다.중학생 시절에는 ‘보리베기 날’이 따로 있었습니다.온 학교 학생들이 학교 근처 마을로 나가, 일손이 부족한 농가의 보리 수확을 도왔지요.사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입니다. 사춘기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낫을 들고 오라고 했으니 말입니다.큰 사고가 없었기에 다행입니다.물론 작은 사고는 있었습니다.저는 낫질이 서툴러 왼쪽 허벅지를 살짝 베고 말았고, 그때의 흉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오해는 마세요. 장난치다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일을 열심히 하다가 실수한 거였습니다.요즘은 콤바인으로 금세 베어내고 탈곡까지 하니, 보리베기는 아득한 추억이 되었습니다.더욱이 보리를 심..
08:49:33 -
담쟁이가 그린 그림
https://www.gyeoja.kr/news/articleView.html?idxno=140주일 오후 교우들과 산책하다 만난 '작품'입니다. 담쟁이가 시골집 벽면이 밋밋했던지 멋들어진 그림을 그려 놓았네요. 게다가 늦가을 정취를 맛보게 빨갛게 단풍물까지 들여 흰 바탕에 컬러풍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조금 떨어져 보니 가느다란 나무들이 이파리를 길게 늘어 뜨린 거 같기도 하고 단풍이 물든 산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주인이 저 담쟁이를 일부러 심었을 리 없습니다. "여기가 내 있을 곳이다"라고 저 혼자 자란 거겠지요. 자신이 그릴 도화지가 있음을 알고 딱 저곳에 싹텄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스스로 자라나 누가 봐주든 말든 이처럼 놀라운 행위 예술을 하는군요. 분명 예술은 사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화가 이..
2024.11.27 -
춤추는 억새와 갈대
사람들은 흔히 '억새'와 '갈대'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억새를 갈대로, 갈대를 억새로 오인하는 일이 많습니다. 둘의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억새'를 '갈대'로 잘못 아는 분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억새'보다는 '갈대'가 훨씬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옥중에 있던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마 11:3)라고 물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떠날 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마 11:7)라고 묻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이 물음은 조금 이상합니다. '갈대'는 광야에서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대가 자라는 곳은 바닷가나 강가, 호숫가, 습지입니다. 갈릴리 호숫가에는 갈대가 자..
2024.11.23 -
저 멀리 날아가는 가을
올해 가을은 유난히 짧습니다. 지난 10월까지 에어컨을 켜야 할 정도로 여름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이젠 가~을'이 아니라 '갈'이 되고 말았다"고 말합니다. 왔는가 했더니만 금세 저 멀리 도망치듯 떠나는 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벌써 초겨울에 들어섰습니다. 이른 아침 나가보면 한기가 느껴지니 곧 서리가 내리겠지요. 여수 현천습지에 겨울 철새인 고니도 두 마리 찾아왔습니다. 내년 가을은 올해보다 더 짧을까요? 이러다가 가을이 다 사라지고 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2024.11.02 -
칠면초로 붉게 뒤덮인 순천 와온
순천 와온에서 바라보이는 솔섬입니다.썰물 상태라 갯벌이 드러나 솔섬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진작가들이 여기서 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칠면초는 칠면조처럼 색깔이 여럿이라고 붙인 이름이랍니다. 명아주과 한해살이 염생식물인데, 녹색,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 등 여러 색으로 변합니다. 사진에서는 붉은 빛깔을 띠며 펼쳐져 있네요. 매년 다르기에 이런 장면을 보기는 쉬은 게 아닙니다. 수년 전에는 칠면초를 보러 와온 해변에 갔다가 너무 적게 자라서 실망한 적도 있습니다.
2024.10.26 -
광주 양림동 골목 풍경
요즘 광주 양림동 골목이 이렇게 변했더군요. 길바닥이 호화스럽게 바뀌어 낯설었습니다. 찻집 앞에서 후배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입니다. 멀리 두 양림교회가 보이지요? 이 길뿐만 아니라 곳곳에 도로를 넓히고 간판도 단장하였더군요.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묻어나는 거리로 만들려고 상당한 투자를 한 모양입니다. 양림동은 1919년 3.1운동 당시 광주 만세시위의 출발지이기도 합니다.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양림동에서부터 아랫장터까지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 행진을 하였습니다. 90년대에 이 길에서는 전남대, 조선대 운동권 학생들(오월대, 녹두대)이 호남신대 아래에 위치한 미문화원을 향해 무수히 진격 시위를 벌이던 곳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5.18 광주학살 책임을 묻기 위함이었습니다.
2024.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