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있던 옛날이 더 살기 좋았어"

2023. 7. 6. 17:34사람들

시골 이발사에게 들은 뜻 밖의 명언

 

 

미루던 이발을 하러 가까운 이발관에 갔습니다. 시골로 이사한 뒤 단골로 다니는 곳입니다. 이발사는 팔순이 넘으셨습니다. 아마 여수에서 가장 연로한 이발사일 겁니다.
 
두어 해 전만 해도 그의 선배 격인 화양면 나진에 구순이 가깝던 이발사 한 분이 계셨습니다. 70년 가까이 이발사로 일하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건강이 급속히 안 좋아지셔서 아쉽게도 이발관을 접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시내 곳곳에 미용실이 들어선 터라 '이발관' 찾기도 어렵습니다. 오랜 단골인 나이 지긋한 시골 농부들이 아니면 내가 다니는 이발관도 곧 사라질 운명입니다.
 
이발사가 내 머리카락을 막 자를 무렵 밀짚모자를 쓴 손님이 한 분 오셨습니다. 이발사와 구면인 이웃 동네 어르신으로 보였습니다. 이발사는 내 이발을 하면서 그 손님과 옛날에 '홀테'(벼, 보리, 조 따위를 탈곡 할 때 쓰던 옛 농기구)로 보리타작하던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살기는 그 시절이 더 좋았어!"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해서 내가 "그때는 보릿고개도 있어 다들 굶을 때도 많았는데 그 시절이 더 좋으셨어요?"라 여쭈었습니다. 이에 이발사와 손님인 농부가 거의 동시에 맞장구를 치며 "그럼, 그때가 더 나았어!"라 하였습니다.
 
이발사는 "옛날에는 정으로 살았거든"이라고 그 까닭을 설명했습니다. "다들 없이 살다 보니(가난하게 살다 보니), 먹을 거만 조금 생겨도 으레껏 나눠 먹을 줄 알았거든. 요새는 그런 게 없잖아?"
 
"옛날에는 대문이라는 게 없었어. 툇마루에 앉아 무얼 먹고 있다가 누가 지나가면 '어이, 자네 어디 가는가? 이리로 좀 와서 이거 좀 먹고 가소' 이렇게 불렀거든."
 
이어 "지금은 다들 대문이 있어서 이웃집이 어찌 사는지도 모르고 살지!"라 덧붙였습니다. 가난해도 대문 하나 없이 한 가족처럼 정으로 어울려 살던 그 옛날이 살기가 더 나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발사는 또 "옛날에는 동냥 다니는 거지도 많았어. 그런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면 아무리 힘들어도 형편껏 보리 한 줌이라도 줘서 보냈지 그냥 보내지 않았어. 근데 지금은 나눠 먹고 살 줄을 모르잖아"라고 말씀하셨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이 넘고 세계 10위 권의 경제 대국이라는 대한민국, 이발사의 말씀대로 과연 옛날보다 더 살기가 나아진 게 맞을까요? 오늘 무심코 이발관에 들렀다가 이발사 어르신에게 평범하지만 귀한 명언을 들은 셈입니다.

"아무리 부자로 살아도 이웃 간의 도타운 정이 사라지면 삭막하고 고독하고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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