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 20:35ㆍ사람들
지난 8월 31일(화), 주철희 박사의 '역사공간 벗'에서 고 박찬길 검사(38세)의 둘째 아들 박경진 목사(75세) 부부를 만났습니다. 박찬길 검사는 여순사건 때 '빨갱이 검사'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진압 경찰에 총살당한 분입니다(보다 자세한 사연은 다음 기사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 http://omn.kr/1v1nv ).
기사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고 박찬길 검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조만식 장로의 제자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장로교 총회 학무부의 장학생으로 일본 동경 중앙대 법학과에서 공부하였습니다. 해방후 이북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박찬길은 가족을 이끌고 월남하였고 법관 시험에 합격해 1945년부터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 검사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는 검사를 그만 두면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는 말도 한 적 있을 정도 신앙심이 깊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평소 신앙 양심에 따라 좌우를 떠나 공정한 법 집행을 기하려 했던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검찰보다 훨씬 막강하였던 경찰은 그를 '빨갱이 검사'로 몰아 여순사건 와중에 총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경찰이 박 검사를 '빨갱이 검사'로 몰아 재판도 없이 총살한 사실은 1949년 군-검-경 합동 진상 조사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자유당 정권의 비호와 경찰의 큰 반발로 누구 한 사람 처벌 받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 무법천지였던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되레 유족들은 박 검사의 시신조차 거둘 수 없을 만큼 공포에 떨며 숨죽이고 살아야 하였다고 합니다. 교사였던 박 검사 아내는 교사를 그만 두고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별세했다고 합니다. 두 아들도 모두 목사가 되었습니다.
박경진 목사님은 현재 부산 염광교회 원로목사입니다. 부친 사망 당시 10개월 아기라 부친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답니다. 하지만 제적부의 기록이나 어머니와 누님, 형님에게 들은 이야기들로 미루어 그가 고 박찬길 검사의 자녀임은 틀림 없습니다. 이제라도 정부가 박 검사 관련 모든 진상 조사 자료를 내놓고 유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배보상을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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