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민중신학

2026. 1. 31. 12:47책 읽기

 

 

부정의 진리를 향한 민중신학자의 순례기, 김진호 목사의 『반신학의 미소』

 

오래 전 김진호 목사와 함께 세미나를 할 때였다. 그는 “신(神)이 신(神)이 되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었다”는 말을 불쑥 던졌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 요체는 ‘성육신 사건’에 있다. 성육신이란 세상을 초월해 특권화된 보좌에 앉아 있던 신이, 자기 해체와 자기 부정을 감행한 일대 사건이다. 알고 보면 이 놀라운 사건에서 기독교는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끊임없이 비판하는 것은, 기독교가 제도화의 길을 걸으며 권력과 타협하고,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위해 현실 세계에 안주해 온 역사다. 이는 교회와 신학 모두에 해당한다. 제도로서의 기독교를 유지·존속시키기 위해, 신학은 교회를 위한 신학만이 정통 신학이라며 스스로 담합해 왔다. 저자가 보기에 이는 인간 세계로 화육한 신을 모독하는 일이자, 그 가르침에 대한 반역이다.

이러니 『반(反)신학』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처음부터 민중신학은 반신학이자 방외인의 신학이었다. 교회와 신학이라는 울타리를 박차고 거리로 나선 신학이다. 그래서 민중신학은 늘 상황신학이며 현장신학이기를 고집한다. 당대의 요구에 신학으로 응답하며, 고난받는 민중과 함께하는 신학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에 따르면 ‘고난과 변혁의 수사학’이 민중신학 담론 속에 면면히 흐른다. 민중의 복리를 추구하되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타협 없이 세계의 고난과 대면하며 일그러진 역사를 폭로하고 증언하는 순례의 길을 계속 걷는다는 의미에서다.

 

그렇다. 이것은 하나의 지난한 순례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신의 부름에 응답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길을 떠났던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의 여정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이 말하는 신앙은 제도 안에 귀착되지 않는 탈주의 신앙이며, 이전에는 없던 낯선 신앙이다.

내가 알기로 저자는 ‘김 각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엄밀하고 난해한 논문식 글쓰기를 즐겨왔다. 그러나 이번 책은 그러한 이미지를 확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다. 논문도 몇 편 포함되어 있으나, 예전에 접했던 그의 글들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훨씬 읽기 쉽다. 그동안 민중신학의 학문성 자체를 노골적으로 폄하하려는 이들이 있었고, 학문의 엄정한 공간 속에 민중신학자로 개입하기 위해 논문식 글쓰기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책을 내놓은 것을 보면, 이제는 일정 정도 자신감이 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본래 신약학 전공자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성서학에만 국한되지 않은, 사회과학 전반에 걸친 그의 해박한 지식에 독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독자는 이 책을 읽어 가며, 시대를 제대로 읽어 내기 위한 민중신학자의 치열한 연구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배제와 박탈의 메커니즘 속에 길들여진 우리를 끊임없이 일깨운다. 교회와 세계에 대한 발본적 비판을 시도하면서, 자폐적 자아중심주의를 벗어나 안과 밖을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보다 성찰적이고 대화적인 사유를 요청한다. 이를테면 예수 사건을 보더라도 기존 신학은 예수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채, 그 주변 인물들을 모두 엑스트라로 취급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예수와 그 주변의 민중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 사건이란 예수와 민중이 함께 일으킨 구원과 해방의 사건이지, 탁월한 예수 혼자 만들어 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객 이분법적 도식을 벗어나자는 주장이다. 얼핏 불경스럽게 들릴 수 있는 탈교회주의나 탈경전주의에 대한 그의 일관된 주장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한 요소만을 특권화하고, 나머지를 배제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해 온 그리스도교의 오만한 관행에서 이제는 벗어나자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기독교 비판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책들과는 색깔과 무게 자체가 다르다. 기존의 기독교 비판서들이 ‘기독교 제 몫 찾아주기’ 수준의 원론적 비판에 머물렀다면, 이 책은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신학이 오랜 침묵을 깨고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에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신학은 이미 그 독창성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신학이며, 해방 이후 한국 인문학이 이룩한 중요한 성취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 신학이 오랫동안 대중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여느 교수처럼 반듯한 연구실이나 강의실을 가진 학자가 아니라, 작은 교회를 섬기는 현장의 목회자다.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겠다. “현직 목회자가 반신학, 교회 해체, 탈경전주의를 말한다니, 과연 말이 되는가?” 그러나 다음에 인용하는 그의 말을 읽어 보면, 이러한 의문은 상당 부분 해소된다.

“그러니 결국 나의 해체론은 그리스도교 자체를 문제시하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길게 이야기한 바에서 드러나듯, 그 비판의 핵심은 종교의 해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른 범주들과의 필연적 연계성을 회복하는 ‘신앙적/신학적 체계로서의 종교의 재정립’에 있다. 그리해야만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신학은 비로소 인간의 문명 안으로 들어와, 그 문명에 대한 비판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신이 인간 문명을 비평하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다른 방식이 아닌 ‘육화의 길’을 택한 것과도 상통한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그리스도교적 제도화의 경로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며, 그 귀결로 형성된 종교 문화와 교회, 신학을 돌파해야 한다. 요컨대 ‘반신학/탈신학으로서의 신학하기’라는 급진적 실천이 요청된다. 이러한 신학하기의 한국적 한 유형으로 민중신학이 탄생했다.” (239~240쪽)

 

말은 과격하지만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는 표리부동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저자를 자주 접하며, 그가 그런 부류와는 거리가 먼 인물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외롭고 고단한 민중신학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때로는 그가 수도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정처 없이 순례의 길을 걸으며, 수많은 사색과 힘겨운 작업을 거쳐 조심스럽게 세상에 내놓은 이 책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다만 한 가지 염려스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의 출간과 함께 여러 일간지가 이를 대서특필했다는 사실이다. 민중신학이 지난 10여 년 동안 이토록 과분한 조명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갑작스러운 언론의 관심 앞에서 다소 어리둥절한 심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문득 저자가 머리글에서 언급한 ‘그 미소’가 떠오른다.

『반신학의 미소』라는 제목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한편으로는 나를 포함한 우리 자신의 작업에 대한 격려의 표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이론적 방황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빠진 우리를 유혹하는 문명의 손짓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으려는 저항의 표정이기도 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