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논리를 찾아서

2026. 2. 2. 13:34책 읽기

뤼시앵 보이아, 『상상력의 세계사』

 

인간의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는 굉장히 광범위하다. 그래서 『상상력의 세계사』라는 제목을 단 이 작은 책을 처음 대했을 때, 과연 인간 상상력의 무엇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다행히도 저자는 광범위한 인간의 상상력 가운데 몇 가지 주제만을 선별하여 그 논리를 착실히 추적하고 있다. 그것은 과학적 상상력의 세계, 공간, 다른 인류들, 종말론적 비전, 천복년설(천년왕국설), 건국 신화, 전체주의 신화 등이다.

 

어떤 사람은 상상력이 종교나 신화적 영역에서나 발견되는 것이지, 과학이나 역사 속에서는 찾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질베르 뒤랑이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도발적인 단언을 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상상력의 세계가 열어 놓은 영역에 속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긴 역사 자체가 상상력을 동력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보기에 상상력에 대한 연구는 그 자체가 바로 인간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한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일정하고 뚜렷한 법칙을 가지고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연구하기에 어려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상상력의 역사’를 여덟 가지 원형 구조로 선별하여 그 논리 구조를 파악해 내기 위한 야심 찬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매우 흥미롭다.

 

객관적 합리성을 자랑하며 절대무비의 힘을 과시하던 ‘과학’도 이제는 그 한계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과학적 합리성 자체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과학과 이성, 진보에 대한 19세기의 절대적 신뢰성 자체도 인간 상상력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공산주의가 말했던 과학의 실패는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약속을 저버렸다. 뿐만 아니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과학만능의 시대에 한때는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초과학적 학문들도 많았다. ‘고우주비행학, 비밀동물학, 초심리학’ 등등. 이 모든 것 역시 인간 상상력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현대에 자리 잡고 있는 ‘신화’도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가령 ‘정신분석학’ 같은 학문은 현재 일반적으로 인정된 학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증과 반박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따라서 엄밀한 과학적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마저도 절대적이라 여기는 것은, 저자에 따르면 지나친 신화적 상상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의 천복년설(천년왕국설)이나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세속적 유토피아의 세계를 견주어 다루는 대목도 흥미롭다. 천국과 지옥, 연옥 등 내세에 대해 인간이 끊임없이 품어 온 믿음과 그 심상(멘탈리떼)은 시대적 변천에 따라 내용과 성격이 리듬을 타듯 변화해 왔으나,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 점은 세속적 유토피아를 갈구해 온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점차 열려 가는 세계로 진입하면서, 그 원형은 실체를 간직하는 동시에 다양성도 획득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보기에 과학 만능주의적 강박관념을 겪고 난 이후, 오히려 인간 상상력의 세계는 전진하게 되었다.

 

예컨대 역사가들은 이야기의 지극한 즐거움을 되찾았고, 주석학자들은 이야기로서의 텍스트를 분석하는 즐거움을 회복했다. 게다가 신화도 모처럼 부활하여 매혹적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지 않은가? 저자가 제안하는 상상력의 세계란 ‘진실과 비진실의 세계’라는 범주를 초월하여, 그 두 가지를 동일한 정도로 동화시킬 수 있는 정신 구조를 가리킨다. “역사적 신화는 완전히 창조될 수도 있고, 또한 의심할 여지없는 사건들에 입각하여 구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상력의 세계에 대한 기준에 따라 구조화되고 방향이 잡힐 뿐이다.

 

따라서 어떤 상상력을 가지고 세계를 창조하고 구축해 나갈 것인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고대인들은 진실을 보다 잘 말하기 위해 ‘거짓말(신화)’을 했던 것이며, 중세 역사 기술에서 결핍된 것은 논리 정연함이 아니라 그 반대”(196쪽)라는 저자의 통찰이 가슴에 와 닿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