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들려주는 옹근 우리 동화

2026. 1. 30. 15:01책 읽기

강정님, 『이삐 언니』 <푸른책들>

 

내가 지은이 강정님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0여 년 전, 광주의 어느 작은 교회에서였다. 당시 이미 강 선생님은 등단한 작가였지만, 단행본으로 동화책을 한 권도 펴내지 않으신 상태였다. 동화작가라는 사실만 알았지, 매주 교회에서 만나면서도 그의 동화를 읽을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향토 책자에서 선생님의 단편 동화를 발견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긴 세월 동안 그를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다시 강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나는 작년 말부터 섬기는 교회에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는데, 열흘 전쯤 시립도서관의 아동서고를 둘러보며 어떤 책을 비치하면 좋을지 살펴보던 중, 강정님 선생님의 <이삐 언니>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때의 반가움과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이제 할머니가 되신 강 선생님이 긴 세월을 보내고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인 동화집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서문 격인 '지은이의 말'에서 강 선생님은 처녀처럼 수줍어하신다. 내가 알기로 선생님은 여느 현대 작가들처럼 대학을 다니거나 문예 창작 수업을 받지 못하셨다. 그저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사랑하여 오랜 세월 써오신 것이다. 독자들은 이런 선생님의 필생의 노력과 정성이 책 곳곳에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복이라는 작은 여자아이의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아마도 복이는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아이일 것이다. 동화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시대부터 해방 초기까지로, 전라도의 어느 시골을 무대로 펼쳐진다. 때문에 지금 어린이들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우리나라 대가족 시대의 시골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에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야 했다. 반면 오늘날 어린이들은 부모와 함께 해외 여행을 다니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를 누비지만 가까운 이웃에는 관심을 둘 겨를이 없다.

 

하지만 주인공 복이는 먼 동네로 시집간 이삐 언니를 찾아가고, 집에서 알을 낳는 암탉과 새끼 돼지, 젖을 먹이는 월이(개) 같은 풍경 속에서 성장한다. 작가는 이처럼 잊혀진 옛 풍경을 동화로 재현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담담히 보여준다. 마을에 최소한의 양심과 정의가 살아 있었고, 북적대지만 정감 넘치는 대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 서로의 형편을 알고 인정하는 관계 등이다. 단순히 옛날을 그리워하는 차원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모습과 가치를 전한다.

 

이 동화는 살아있는 우리네 이야기를 중심으로, 요즘 어린이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삶의 가치들을 전해준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라면,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 앉아 듣고 배운 우리네 살림터 이야기를 오늘에 맞게 제대로 복원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강정님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훌륭한 교육적 가치가 있다. 동화책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먼 길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듯 호흡이 길다. 전라도 투박한 사투리 또한 동화의 맛을 더한다.

 

주인공 복이 주변에는 마음씨 고운 이삐 언니, 엄하면서도 정이 많은 할아버지, 투박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광암 아저씨, 돼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월이 같은 존재들이 있다. 복이는 이들을 통해 이웃에 대한 배려와 깊은 이해심, 넓은 세상에 대한 진기한 경험과 지혜를 배웠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잊혀져 가는 살림터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할머니 작가 강정님 선생님이 있다. 그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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