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통일 전에 꼭 풀어야 할 숙제

2026. 1. 22. 11:37ㆍ책 읽기

망자의 해원으로 읽는 황석영의 『손님』

 

 

해체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자크 데리다(J. Derrida)는 그의 저서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에 등장하는 ‘유령’이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 가운데 환영(유령)에게 말을 걸거나, 그것과 관계할 자격을 갖춘 학자는 없었다는 현실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유령적 성격의 가상적 공간에 호소할 수 있는 학문적 태도 자체가 부재해 왔음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와 관련하여 죽음이 때로는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황석영은 그의 소설 『손님』에서 우리가 흔히 접해 온 일반적인 소설 형식에서 벗어나, 전에 없이 독특한 구성을 선보인다. 작가는 데리다의 문제의식을 연상시키듯 망자를 불러내어 초혼굿을 벌이듯이, 진지노귀굿 열두 마당의 순서로 이 소설을 엮어 나간다. 이 작품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치 동일한 현실 속에 존재하는 듯 서로 대화를 나누며, 모두가 중요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이야기이며, 그들의 회상은 ‘공공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인간의 시간을 새롭게 창조해 내고 있는 셈이다.

 

작품의 서술 방식 또한 매우 독특하다. 작가는 이른바 현대 리얼리즘에서 말하는 ‘객관성’ 개념 자체를 문제 삼으며, 1인칭 시점에서 갑작스레 3인칭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화와 상황 묘사는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의 일방적인 기술을 넘어, 여러 화자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겪은 체험을 직접 말하도록 한다. 그 결과 평면적인 사실 묘사를 뛰어넘어, 매우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인물들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형식적 실험만큼이나 독자를 강렬하게 사로잡는 것은 그 내용이다. 『손님』은 한국전쟁 전후 서북 지역, 특히 신천을 중심으로 벌어진 기독교 세력과 사회주의자들 간의 혈투가 낳은 비극을 그리고 있다. 당시 서북 지역은 한국 기독교의 요람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많은 걸출한 기독교 인재들이 이 지역에서 배출되었고, 중농이나 상업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이룬 기독교인 소자산가들도 적지 않았다. 사회주의 진영은 이러한 기독교 소자산가 집단을 숙청 대상으로 삼았고, 이는 반사적으로 기독교 내부에 극심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 교회사를 살펴보아도 한국전쟁 전후 기독교인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심각한 갈등을 보여 주는 사건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1945년 9월, 윤하영과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결성된 기독교사회민주당의 용암포 지부 결성식 현장에 공산당원들이 난입해 홍석황 장로가 타살되고 간부 전원이 구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회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이어 항의 집회를 벌이던 기독학생들을 향해 소련군 전투기가 무차별 기총소사를 가해 50여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는 참사도 벌어졌다. 1946년 3·1절 기념행사 때에도 양측 간의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있었으며, 친공 성향의 기독교 조직인 조선기독교도연맹이 결성되면서 기성 교회와의 마찰이 잦아졌다. 우익 기독교 청년들과 좌익 공산주의 청년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충돌은 반복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모두 우리 민족에게 ‘손님’이다. 그것은 단순히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 서양에서 유입된 무서운 유행병 천연두를 가리키는 ‘손님마마’에 가깝다. 한 번 발병하면 죽음에 이르게 하고, 간신히 살아남더라도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는 존재 말이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그 신앙과 이념 자체는 훌륭했을지 모르나, 해방 정국이라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소용돌이와 파국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양측 모두 자신들의 신념과 이상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강했고, 타인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이 싸움은 이념의 충돌이자 기득권과 주도권을 둘러싼 다툼이기도 했다.

 

이 싸움에서 밀려난 기독교 우익 세력들은 대거 월남하여 남한 기독교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대체로 기독교의 이름으로 반공·승공·냉전 논리를 앞세우는 주체가 되었다. 그렇기에 당시의 악몽과 피비린내 나는 기억은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황석영은 북한을 방문해 체류하던 시기에 자신의 고향 신천을 둘러보며, 그곳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들과 이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을 수집했다. 그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손님』을 소설화했다고 밝힌다. 따라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참혹한 학살 장면들은 대부분 사실에 매우 가깝다.

 

이 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죽은 자들 사이에서는 이승에서 아무리 깊은 원한을 품었던 원수라 할지라도 결국 화해에 이른다는 설정이다. 살아 있을 때는 죽기 살기로 싸우고 다투었던 이들도, 죽음 이후에는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지난 일이 된 듯 자신의 행동을 담담히 회고한다. 다만 그들의 맺힌 한을 풀어 주기 위해 진지노귀굿이 성대하게 치러질 뿐이다.

 

황석영은 이 소설을 통해, 앞으로 통일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남북한의 과거사 책임 공방과 깊이 응어리진 원한을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는 민족 내부의 좌우 대립과 비극이 사실상 강대국들에 의해 구조적으로 자행되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또한 무작정 덮고 잊자는 태도가 아니라, 망자들의 피맺힌 원한을 어떻게 해원하고 그것을 통일의 길로 전환할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자고 독자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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