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2. 11:04ㆍ책 읽기
조영남의 삶과 사유로 읽는 대중적 예수 이해
조영남의《예수의 샅바를 잡다》

솔직히 말해, 조영남의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많지 않았다. 한때 가스펠을 열심히 불렀고 신학 공부까지 했지만, 지금은 대중가요 가수로 살아가며 기독교와는 거리를 둔 인물이라는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신대원 시절 도서관에서 《한국 청년이 본 예수》라는 그의 비교적 두꺼운 책을 발견하고 잠시 호기심을 품은 적은 있다. 그러나 “가수가 쓴 신학적 글이 얼마나 깊이가 있을까”라는 막연한 편견 탓에, 그저 몇 장을 넘겨보는 데서 그쳤다.
그러나 《예수의 샅바를 잡다》를 읽고 난 지금, 그 책을 진지하게 읽지 않고 지나쳐 버린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이 책은 단순히 “생각보다 괜찮다”는 수준을 넘어, 필자를 놀라게 할 만큼 탄탄한 예수 이해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여느 전문 신약학자 못지않게 방대한 독서와 사유를 바탕으로, 조영남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수를 해석하고 풀어낸다.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신학교 시절 담당 교수가 ‘예수’를 주제로 리포트를 과제로 낸 일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평생 예수만을 믿고 살다간 자신의 부모가 과연 무엇을 보고 그렇게 신앙에 매달렸는지를 알고 싶다는 개인적 동기도 있었다. 그는 그때부터 예수와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그 결과 이 책 곳곳에는 슈바이처를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의 이름과 주장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그 복잡한 논의들을 자신의 언어로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대중성이다. 신학생이나 목회자, 혹은 기독교 신자만을 독자로 상정한 책이 아니라, 종교적 배경이 없는 독자라도 무리 없이 읽어낼 수 있도록 쓰였다. 학문적 엄밀함보다는 이해 가능성과 전달력을 우선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기존의 예수 연구서들과 다른 결을 지닌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책에 짙게 배어 있는 ‘한국적 시선’이다. 조영남은 외국 신학자들을 인용하면서도 전봉준, 강증산, 최제우, 원효 같은 한국사 속 인물들을 끌어와 예수와 나란히 세운다. 독자들에게 낯설 법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인명사전식 설명을 덧붙이는 친절함도 잊지 않는다. 예수를 철저히 한국인의 눈으로, 한국의 역사와 삶의 경험 속에서 읽어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독특하다. 기존의 신앙 간증서와는 달리, 개인적 삶의 이력과 역사적 유비를 통해 예수를 재조명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최신 예수 연구의 흐름, 특히 슈바이처 이후 전개된 예수전 연구사에 대한 이해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최근에 출간된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자신의 삶의 경험을 예수 이야기와 지나치게 밀착시켜 전개하는 방식은, 독자에 따라 자기 변론이나 자기 과시로 비칠 위험도 있다. 더 나아가 경험과 취향에 의존한 해석은 주관주의로 기울어 보이기도 한다. 도올 김용옥의 예수 이해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태도 역시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철저히 ‘조영남식 예수 읽기’라는 점에서 그 존재 이유가 분명하다. 비기독교인을 자처하는 한 대중예술가가 자신이 이해한 예수를 이토록 생생하고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성취다. 예수가 더 이상 기독교인들만의 배타적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사유해 볼 수 있는 인간적이고 사상적인 인물임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적잖이 반성하게 되었다. 신학을 7년이나 공부했으면서도 정작 예수에 대한 나름의 시각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고, 동시에 이스라엘 역사와 서구 신학자들에 비해 한국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얼마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를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샅바를 잡다》는 단순한 독서 경험을 넘어, 나 자신의 사유를 되돌아보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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