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뱃속에서 떠드는 인간들

2026. 1. 22. 10:54ㆍ책 읽기

도스토예프스키가 조롱한 무위(無爲)의 지식인과 탐욕의 시대

도스토예프스키의《악어》

 

 

예쁜 아내를 둔 이반은 모처럼 맞은 휴가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에 들떠 있다. 그러나 여행에 앞서 아내는 동물원에 새로 들어온 ‘악어’를 먼저 보자고 제안하고, 예전 같았으면 단칼에 거절했을 그가 웬일인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는 친구인 ‘나’까지 불러 함께 동행한다.

 

동물원에 도착한 이반은 유럽에서 들여온 괴물 같은 악어를 희롱하다가, 순식간에 그에게 붙잡혀 통째로 삼켜지는 참극을 맞는다. ‘나’와 이반의 아내는 남편이 악어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당장 악어의 배를 갈라 남편을 꺼내라”고 외치지만, 악어의 주인은 냉정하게 이를 거부한다. 악어가 얼마나 비싼 동물인지 아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악어가 이반을 삼킨 탓에 소화를 못 해 죽을 수도 있다며, 그에 대한 배상을 걱정하라고 윽박지른다.

 

친구가 악어에게 삼켜지는 상황에서도 묘한 스릴을 느끼며 웃음을 터뜨리는 ‘나’, 악어 한 마리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독일인 악어 주인과 그의 아내. 이쯤 되면 이 소설이 단순한 기괴담이 아니라, 노골적인 세태 풍자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더 기묘한 것은 악어의 뱃속에 들어간 이반이다. 그는 죽기는커녕 그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으며, 자신을 걱정하는 친구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다. 나아가 그는 마치 일약 스타가 된 사람처럼 떠벌리며, 인류의 미래를 논하기 시작한다.

“통나무처럼 누워서도 인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내가 증명해 보일 거야. 우리나라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기사 대부분도 통나무처럼 누워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야. 아무도 없는 외진 구석이나 악어의 뱃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있으면 그만이지. 그러면 곧 인류를 위한 완벽한 천년시대를 구상해 낼 수 있어.”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장면을 통해,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말과 사상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려 드는 인간 군상을 날카롭게 조롱한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이래라저래라 충고하고 명령하는 이들, 지식인 행세를 하며 비평과 평론에만 몰두하는 이들, 자신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자기 도취에 빠진 인간들. 작가는 이들을 악어의 뱃속에서 떠드는 이반의 모습으로 압축해 보여 준다.

 

더욱 씁쓸한 것은,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도 각자의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주변 인물들의 태도다. 누군가는 돈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동물 보호를 앞세우며, 누군가는 자신의 미래만을 염려한다. 이러한 풍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된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저울질하는 사건들은 오히려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풍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가장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당사자 이반 자신 또한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점에서, 작가는 인간 사회 전체를 향해 웃음 섞인 절망을 던진다. 허황된 이상에 도취되어 현실을 외면하는 인간, 바로 그 인간상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표적이다.

 

《악어》는 헛된 물욕과 공허한 말로 가득 찬 인간 사회를 기괴하고도 유쾌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짧지만 날카롭고, 웃음을 자아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소설은, 오늘을 사는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악어를 비웃을 자격이 있는가, 아니면 이미 그 뱃속에서 떠들고 있는 존재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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