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2. 10:01ㆍ책 읽기
한국 노동운동과 노동자 계급 변화의 구조적 이해

한신대 사회과학연구소가 발간한 《한국사회와 노동운동》(현장에서 미래를, 1999)에서 김동춘 교수는 1990년대 후반 한국 노동자의 내부 구성 변화를 계급 형성의 시각에서 심도 있게 분석한다. 그는 노동운동, 노사관계, 노동정치의 모든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으로 확인해야 할 질문을 던진다. 즉, 전통적 프롤레타리아화 명제에서 말하는 대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에서 배제되고 동질화된 계급으로 형성되는지, 아니면 노동자 상층부가 서비스 계급으로 분화되고 내부에서 파편화와 분열이 심화되는지 여부다.
서구에서는 이미 다양한 이론적 논의가 이루어졌다. 가령 고즈(Gorz)의 “노동 계급이여 안녕”과 리프킨(Rifkin)(1996)의 “노동의 종말”론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전통적, 계급의식적인 노동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라쉬(Lash)와 (유리)Urry(1987)는 교육과 자격증의 중요성 때문에 노동의 범주가 해체되고, 조직화된 산업노동자의 감소로 서비스화된 노동자가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다고 본다. 이러한 논의들은 마르크스적 계급 양극화나 노동자 계급의 동질화 테제를 재검토하거나 계급 정치의 약화와 소멸을 설명하는 데 활용된다. 그러나 김동춘 교수는 이념적 전제를 배제하고, 노동자 내부 구성 자체의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1997년 7월 제조업 노동자는 444만 명이었으나, 1년 뒤인 1998년 7월에는 376만 명으로 15.4% 감소했다. 반면 서비스업 종사자는 1987년 920만 명에서 1997년 1,422만 명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산업별 제조업 상용근로자 비중 역시 1989년 전체 비농업 상용노동자의 62%였으나, 1997년에는 47%로 축소되었다. 이에 반해 같은 기간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중은 35%에서 51%로 증가했다. 이는 한국에서도 제조업 생산직과 조직화된 노동자의 비중이 감소하고, 서비스·판매직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다.
김동춘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노동자 계급형성과 조직화 가능성에 미치는 효과를 강조한다. 특히 사적 서비스나 도소매업 종사자의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 노동자의 집합성과 계급 정체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낮은 노조 조직률로 나타난다. 세계화된 경제질서와 유연화된 생산, 고용체계는 대다수 노동자를 끊임없는 고용 불안과 낮은 임금, 열악한 조건으로 몰아넣고 있다.
일국 단위에서는 전통적 노동자 계급이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전 세계적 관점에서는 소유/비소유, 가진 자/못 가진 자의 구조적 모순과 대립은 오히려 심화된다. 따라서 과거의 추상적·목적론적 계급개념이나 ‘탈주체’ 담론의 한계는 명확하며, 문제는 왜 이러한 자본 지배와 구조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직된 노동의 항거가 충분히 발생하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데 있다.
김동춘의 분석은 한국 노동운동과 노동자 계급형성의 현실을 구조적, 통계적, 이론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90년대 후반 한국 노동자 내부 구성의 변화와 서비스화, 파편화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자와 학생에게 필독서로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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