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이웃, 사라진 얼굴

2026. 1. 21. 16:53ㆍ책 읽기

『사랑의 지혜』가 드러내는 레비나스 윤리의 역설

 

A.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를 읽게 된 것은, 그의 글이 비교적 부담 없이 읽히는 철학 에세이의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레비나스를 광범위하게 인용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레비나스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윤철호 교수의 강의를 통해 처음 접한 사상가인데, 당시 국내에는 그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저작이 거의 없어 늘 궁금증을 남기던 인물이었다.

 

책의 전개는 초반부에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사건이나 인물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채, 주변을 맴도는 듯한 서술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대목이 등장한다. 바로 레비나스의 말을 인용한 「어떤 의미에서는 이웃만큼 귀찮은 것도 없다」라는 소제목 아래의 논의였다.

 

이 단락 하나만으로도 이 책에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 만큼, 문제의식은 날카로웠다. 이 글은 그동안 민중신학이 보여주었던 ‘민중’에 대한 일종의 집착을 다시 성찰하게 만들었고, ‘이웃 사랑’이라는 그동안 거의 반박 불가능해 보였던 명제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 보였다.

 

저자는 주체와 타자 사이의 관계 속에서 노정되는 갈등과 혼란, 그리고 폭력을 ‘얼굴’이라는 개념을 통해 파헤친다. 그는 민중에 의해 전체주의적 폭력이 자행될 수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그 구체적인 사례로 드레퓌스 사건과 유대인 대학살을 제시한다. 민중과 파시즘은 결코 무관하지 않았으며, 민중에게 각인된 ‘적대자’의 이미지와 실제 타자의 얼굴 사이에는 심각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유대인 학살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거의 죄의식 없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발가벗겨진 유대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발가벗겨진 유대인들은 몸에 의해 얼굴이 지워진 존재들이다. 얼굴을 잃은 타자는 더 이상 인격적인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고, 거대한 집단이나 물결처럼 보일 뿐이다. 그 앞에서 인간적인 응답이나 책임은 발생하지 않는다.

 

유대인 여성을 재판하면서 “네가 무슨 말을 하든 관심 없다”고 말하는 판사의 태도는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귀와 눈을 닫아버린 상태에서 재판은 이미 결론을 내린 채 진행되며, 판단을 유보하거나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처음부터 차단된다. 결국 판결은 언제나 동일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타자에 대한 선입관을 유보한 채 이루어지는 대화와 소통의 절박한 필요성일 것이다. 동시에 그는 서로를 완전히 포섭하거나 동화하지 않은 채, 일정한 거리 속에서 자존할 수 있는 관계의 윤리를 역설한다. 핵무기, 스탈린주의, 집단학살을 거쳐온 20세기 이후의 세계에서, 상투적인 윤리적 규준을 반복하는 데서 벗어나 현실을 근본부터 다시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 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