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얼굴을 한 예수

2026. 1. 21. 16:38ㆍ책 읽기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교리보다 삶을 묻는 그리스도론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고 고백하느냐는 문제는 단지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신앙이 역사 속에서 어떤 실천으로 이어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론은 신학의 중심에 놓여 왔고, 시대마다 새롭게 질문되어 왔다.

 

레오나르도 보프의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우리 시대의 비판적 그리스도론』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라틴아메리카의 억압적 현실 속에서 제기한 책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70년대 초 브라질은 군사독재와 정치적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였다. 보프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특권층 그리스도인들을 억압받는 이들과의 연대로 이끌고, 인간을 파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메시아적 과업에 헌신하도록 돕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이 책은 상아탑의 신학이 아니라, 고통받는 현실과 맞닿은 신학적 실천의 산물이다.

이 글에서는 보프가 제시하는 그리스도론의 핵심을 따라가며, 그의 예수 이해가 오늘의 신앙과 실천에 던지는 의미와 한계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사건으로서의 예수, 해석에 앞선 삶

보프는 18세기 이후 본격화된 역사적 예수 연구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계몽주의 이후의 연구는 복음서를 객관적 전기가 아니라 신학적 해석으로 읽어내며,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분리해 왔다. 그 결과 예수는 실존적 해석이나 케리그마 속으로 흡수되고, 실제 역사 속 인물로서의 예수는 점점 희미해졌다.

 

이에 대해 보프는 분명히 말한다. 케리그마가 먼저가 아니라 사건이 먼저였다. 역사적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이라는 사건이 있었기에, 이후의 신앙 고백과 신학적 해석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를 말로 포착할 수 없는 존재로 이해하면서도, 예수의 생애 자체가 이미 신앙의 사건이었다고 강조한다. 안병무가 요한복음의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를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라고 바꿔 읽은 것은 이러한 관점을 잘 드러낸다.

 

다만 보프는 ‘사건의 선차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충분히 전면화하지는 못한다. 이 점에서 그의 논의는 여전히 교의적 그리스도론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역사 속 실천의 주체로 다시 불러낸 시도는 분명 의미 있는 출발이다.

신앙은 해석이 아니라 위치에서 시작된다 

보프에게 그리스도 이해는 중립적 관찰의 결과가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기”보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말하기”를 선택한다. 이는 신학의 출발점이 객관적 사유가 아니라,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서는 자리임을 뜻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앙은 언제나 위치성을 가진다. 예수를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리스도론의 내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보프의 신학은 이 점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전면에 내세운다.

제도보다 인간, 교설보다 실천

보프의 그리스도론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현실에서 형성된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그리스도론의 특징으로 제도보다 인간을, 사실보다 희망을, 교설보다 실천을,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교회 중심의 신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과 해방을 중심에 두려는 시도다. 다만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대목에서는 다소 오해의 여지가 남는다. 보프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비현실적 환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의 선취’이지만, 이 개념이 충분히 정제되지 않은 채 사용되면서 혼선을 낳는다.

그럼에도 그의 기본 입장은 분명하다. 정통 교설보다 정통 실천이 우선한다. 신학은 이해를 넘어 삶의 형식을 바꾸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수는 자신을 설교하지 않았다

보프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로 설교하지 않았다. 그는 하느님 나라를 살았고, 그 나라의 방식으로 행동했다. 예수에게 붙여진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들은 후대의 신앙 공동체가 예수의 삶과 권위를 해석하기 위해 부여한 언어였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초월적 공간이 아니라, 이 세계가 새롭게 변모되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정치와 무관한 영적 영역이 아니라, 인간을 소외시키는 모든 구조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이 점에서 보프는 예수를 인간 조건의 해방자, 창조적 상상력과 비상한 감지력을 지닌 인물로 조명한다.

다만 하느님 나라를 지나치게 역사 내적 차원으로 환원할 위험 또한 존재한다. 성서가 말하는 나라는 인간의 실천 속에서 시작되지만, 동시에 인간의 이해를 넘어 **‘도래하는 나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긴장은 보프의 그리스도론이 남긴 중요한 신학적 과제다.

부활은 현존의 방식이다

보프는 부활을 단순한 육체의 소생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총체적 완성으로 이해한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특정 공간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연대가 실현되는 곳마다 현존한다. 그는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모든 이들—심지어 ‘익명의 그리스도인’들 안에서도—활동하신다.

더 나아가 보프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제시하며, 그리스도의 의미를 지구적 차원을 넘어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이 논의는 다소 과감하고 사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신앙과 과학,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다시 묻는 진지한 시도라는 점에서 평가할 가치가 있다.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연구를 학문적 유희가 아니라 역사적 실천의 문제로 되돌려 놓는다. 예수는 연구의 대상이기 이전에 따름의 대상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 속에서 예수를 어떻게 고백하고 실천하느냐가 곧 그리스도론의 진정한 시험대다.

보프의 신학은 완결된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진다. 오늘 예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 그를 따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라틴아메리카만이 아니라, 분단과 불의의 구조 속에 놓인 한반도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금도 살아 있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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