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을 베다

2024. 7. 23. 20:56농사 이야기

예초기로 벤 논두렁

 

부모님이 논두렁을 베지 못해 걱정이 많으셨다. 아버지가 조금만 젊으셨어도 직접 낫이나 예초기로로 베셨을 거다. 구순이 넘으신 터라 걷기조차 불편하신 상태다. 김매기를 하시면서도 보조 의자에 앉으셔야 겨우 작업이 가능하시다. 잔디 깎는 예초기를 들고 부모님 댁으로 갔다. 아버지는 논에 붙어 있는 작은 밭에서 김매기를 하고 계셨다. 

 

곧장 예초기로 작업을 시작했다. 논두럭과 벼 사이에 물풀들이 자라 있어 그것마저 없애야 하였기에 시간이 더 걸렸다. 더욱이 풀이 자라지 못하게 논두럭에 검은 포장을 덮어 두어 작업 도중 예초기 날이 자꾸 포장에 박혀 멈춰야 하였다. 맨흙이라면 작업이 훨씬 더 수월하였을 텐데 여러 모로 성가셨다.

 

가장 큰 장애는 예초기 밧데리였다. 배터리를 두 시간용과 한 시간용, 두 개를 챙겨 갔으나 제 시간 용량만큼 나오진 않았다. 특히 한 시간용 밧데리는 약 15분쯤 쓰면 다 닳고 없었다. 충전기를 챙겨 갔기에 관정 관리실 콘센트를 활용해 충전하였으나 충분한 충전을 하려면 시간이 걸리기에 그게 난점이었다. 첫날은 절반 가량 베어내자 저녁 7시가 되었다. 오후 5시경부터 약 2시간쯤 작업한 거였다. 

 

작업 도중 예초기에 머리 부위가 찍혀 죽은 뱀

 

둘째 날 아침, 두어 시간이면 나머지를 손쉽게 마무리할 거라 예상하였다. 아니었다. 1시간 20분쯤 지나자 오전 8시가 넘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광주 전대병원에 진료를 다녀와야 하였다. 오전 내내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병원은 왜 그리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건지 모르겠다. 아픈 사람이 너무 많고 그러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도 길기만 하였다. 

 

다시 논으로 가서 나머지 예초 작업을 하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작업 도중 뱀 한 마리가 예초기 날에 머리가 찍혀 바둥거렸다. 무슨 뱀인지 잘 몰랐으나 방금 검색해 보니 '구렁이'였다. 구렁이는 멸종위기종이라는데 안타깝다. 예초기 소음을 들었으면 도망갈 일이지 가만 있다가 사고를 당한 거 같다. 뱀은 청력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바닥의 미세한 진동은 듣지만 공기로 전해지는 고주파는 잘 듣지 못한다. 아마 그래서 구렁이가 예초기 소리에 도망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논두렁에 풀이 우거져 있다

 

논두렁 베기 작업은 오후 4시 30분경에야 겨우 끝났다. 중간에 밧데리 충전을 하느라 약 40분쯤 쉬어야 하였으니 세 시간쯤 걸렸다. 논두렁 베기, 직접 해 보니 여긴 힘든 게 아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해 보았으나 아버지는 수십 년간 홀론 이 논두렁을 베셨다. 벼농사에서 논두렁 베기 작업은 상당히 중요하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앞으로 수확 때까지 한 차례 더 논두렁을 베야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