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멀칭, 편리하지만...

2021. 4. 19. 20:45짧은 생각

동네 부근 길가 밭 풍경이다. 옥수수와 감자를 비닐 멀칭을 하여 심었다. 밭 가장자리에는 검정 비닐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아마 작년이나 재작년 사용한 비닐들일 거다. 이런 풍경은 전국 농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농작물 키우는데 비닐 멀칭을 하는 까닭은 잡초 억제, 수분 유지, 토양 유실 방지 따위를 위해서이다.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잡초 억제'일 거다. 비닐 멀칭을 해 두면 잡초들이 올라오지 않기에 김매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비만 왔다 하면 금세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들만 없어도 농사의 고충은 크게 줄어든다. 시골 농부 대부분이 고령이라 김매기를 하기에는 몸이 잘 따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얼른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말처럼 비닐 멀칭을 한다. 

 

하지만 추수한 뒤 남은 폐비닐은 골칫덩이다. 잘 모아서 분리수거를 하여 쓰레기차가 실어 가게 하면 좋겠지만, 각 지자체 환경미화원들조차 시골 길가에 마구 쌓아 두는 폐비닐 수거에 난색을 보인다. 더욱 심각한 건 농촌에서는 폐비닐을 함부로 태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폐비닐을 태우면 다이옥신, 환경호르몬 같은 유해 물질이 발생하고 미세먼지가 생겨나기도 한다. 그런 오염 물질은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고 가축 사료에도 남아 가축 폐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폐비닐은 무려 백 년 넘게 썩지 않는다고 한다. 그 긴 세월 동안 밭이 어찌 변하겠는가. 폐비닐이 있는 곳에는 각종 미생물이 살기 힘들다. 그만큼 땅이 병들 수밖에 없다. 

 

요즘 들어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몇몇 나라들은 생분해성 멀칭(종이 멀칭, 액상 멀칭) 사용을 법제화하여 보조금을 지불하며 쓰도록 권장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관련 법령조차 없는 현실이다. 넋두리만 하고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윤재갑 의원(더민주, 해남/완도/진도-농림식품해양수산부)에게 관련 법령을 발의해 달라고 전자메일을 보냈다. 과연 귀담아듣고 법령을 발의해 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그가 발의하지 않더라도 더 문을 두드려 볼 생각이다. 땅이 자꾸 병드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굳이 생분해성 멀칭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밭작물을 기를 방법은 있다. 돋아나는 풀들 베어 농작물 주변에 덮어주는 형태로 농사를 지으면 된다. 그러면 그 자체가 멀칭 효과를 내고 베어낸 풀들이 썩어 거름이 되며 폐비닐 같은 오염물질도 나오지 않으니 일석삼조 효과가 있다. 지금이야 비닐 멀칭 농사가 당연해 보이지만, 기나긴 세월 이 땅의 농부들은 비닐 멀칭 없이도 농사를 잘만 짓고 살았다. 땅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사람도 건강해진다. 땅은 물품을 생산하는 공장의 기계가 아니다. 땅을 마구 혹사하면 땅은 그대로 우리에게 돌려주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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