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5. 11:22ㆍ농사 이야기
새벽 1시경, 닭장에서 닭들이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뭔가 침탈한 게 틀림없었습니다. "족제비가 왔을까, 아니면 또 들개?" 잠자리에서 일어나 외등을 켠 뒤 닭장에 나가 보았습니다. 닭장 쪽을 비추는 외등은 수명이 다했는지 아주 희미하게 켜진 상태라 어두컴컴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관 데크 밑쪽으로 덩치 큰 흰개가 쏜살처럼 도망쳤습니다. 닭장을 뚫으려고 하다가 인기척을 듣고는 달아난 겁니다. 다행히 닭장 자체는 뚫리지 않았습니다. 닭장 틈새를 벌이려 시도한 건지 닭장이 조금 이지러졌고 아래쪽 벽돌 두어 개가 나뒹굴어 있어 그걸 정리하였습니다. 방으로 들어간 뒤 아무래도 다시 올 거 같아 외등을 켜 둘까 잠시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손전등을 들고 닭장에 가서 닭장 상태를 좀 더 자세히 살폈습니다. 별 이상은 없었습니다. 들개는 어디로 도망친 건지 사방은 조용하였습니다.
"사람을 보고 놀라 도망쳤으니 설마 오늘 다시 오진 않겠지?" 그러길 바라며 소등하고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닭장을 좀더 튼튼히 보수해야겠다'라고 마음먹고는 다시 잠을 청하였습니다. 아침나절, 닭장은 아무 이상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진에 보시듯이 닭장에는 큰 구멍이 두 개나 나 있었고 수탉의 흰 털이 닭장 바닥 곳곳을 나뒹굴었습니다. 닭 세 마리가 감쪽 같이 사라졌습니다. 겨우 한 마리 암탉만이 마당에서 돌아다니는 중이었습니다. 지난 2월 20일에도 들개가 침탈한 적 있습니다. 그때는 두 마리 닭을 물어 갔고, 한 마리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약 한 달 만에 비슷한 형태의 들개 침탈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지난 달 닭장이 뚫렸을 때는 남은 닭장망 조각을 활용해 두 겹으로 닭장을 보수하였습니다. 아무리 들개가 힘이 세더라도 두 겹의 닭장은 뚫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착각이었고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새벽 닭장은 보란 듯이 또 뚫리고 말았습니다. 참담하였습니다. 들개 침탈을 당한 뒤 닭장을 튼튼하게 만들지 못한 내 잘못이었습니다.
철물점에 가서 굵은 철사와 조밀한 철망을 샀습니다. 기존 닭장 위에 조밀한 철망을 덧대어 설치하였습니다. 이래도 뚫린다면 울타리용 철망을 설치하면 모를까 대책이 없다고 봐야겠지요. 울타리용 철망은 가격도 비싸거니와 닭장에 적합한 형태로 나오지도 않습니다. 새로 철망을 설치한 뒤 사료집에 가서 중닭 네 마리를 사다가 넣어 주었습니다. 한 마리당 6천 원이네요. 달걀을 낳으려면 아마 석 달쯤은 길러야 할 겁니다.
들개는 닭 세 마리를 어떻게 물고 갔을까요? 세 번이나 오갔기에 가능하였겠지요. 그 동안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니 얼마나 깊은 잠에 취해 있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새로 설치한 철망을 뚫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기존 닭장 철망은 구멍이 조금 컸기에 발로 잡아당기거나 이빨로 물어 끊어낸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설치한 철망은 조밀한 구멍이라 발로 잡아당기기도 이빨로 물어 뜯기도 용이하진 않겠지요. 더욱이 그 뒤에 기존 철망이 또 있으니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겁니다.
취약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닭장 문 왼쪽에 작은 닭장이 하나 더 연결돼 있습니다. 그 닭장은 비어 있는데 한 겹 닭장망입니다. 그 닭장과 오른쪽 닭장은 닭장 철망 하나로 나뉘어 있습니다. 따라서 들개가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면 빈 닭장을 뚫고 들어가 칸막이로 설치한 철망을 뜯어내고 침탈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과연 그 정도 뛰어난 머리를 지닌 건지는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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