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처럼 콕 찌르는 대한민국 비판서

2026. 2. 2. 14:07ㆍ책 읽기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1999년 한국에 귀화한 러시아 출신 학자 박노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어와 한국사에 능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것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했다. 유려한 문장 구사, 한국사 전공자다운 역사적 안목, 그리고 한국인 스스로 지금껏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 대한 정직한 통찰을 접하다 보면 누구나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외국인이 피상적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에 대한 경험담들과는 아예 그 격을 달리한다. 박노자는 ‘외국인 저자’이기 이전에 진정으로 한국 사회를 내부에서 사유하는 한국인에 가깝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향해 진실을 말했던 정직한 아이처럼, 그는 한국 사회에 약이 될 만한 신선하고도 불편한 화두를 던지는 젊은 학자다.

 

본래 병 치료에 진짜 도움이 되는 약은 쓰디쓴 법이다.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가 지적한 문제들이 얼마나 깊은지를 놓치고 있는 셈일 것이다. 저자의 한국 사회에 대한 해부는 그만큼 솔직하고 예리하다. 만약 그가 귀화하지 않은 외국인 신분에 머물렀다면, 우리는 “한국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며 변명부터 늘어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비난이 아니라,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가능한 고언(苦言)이기에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 사대주의, 종교적 패거리 문화, 그리고 폭력이 충만한 사회 구조에 대한 저자의 신랄한 지적은 독자를 아찔하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아직도 폭력이 충만한 사회’라는 주제 아래 다뤄지는 군대 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는 평화주의자로서, ‘민족’과 ‘신성한 국방’을 앞세우는 군대가 실상은 폭력 집단에 가깝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국가적 자해 행위를 중단하고, 그들이 폭넓은 대체 복무를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막연한 낭만적 이상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한국에 처음 유학 왔을 당시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군대에 대한 인식을 꾸준히 인터뷰해 왔고, 그 과정에서 군사 문화가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심각한 악영향을 체감하게 되었다.

 

한국사를 전공한 저자가 가장 중요한 역사적 교훈으로 자주 드는 것은, 다민족 국가들이 단일민족 국가보다 오히려 더 자주적이고 선진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신화를 절대적 진실처럼 받아들여 온 사람들에게 폐쇄적 국수주의를 벗어 던지게 하는 통렬한 일갈이다.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와 강한 군사력 역시 다종족적·다문화적 포용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많은 고민 끝에 한국인으로 귀화하기로 결심한 주요 이유 중 하나도, 폐쇄적 단일민족관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한국 민족주의의 허구성을 ‘혈통주의를 부정한 재외동포법’을 사례로 들어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현행 재외동포법에 따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전에 해외로 이주한 동포들은 ‘재외동포’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그 결과 중국, 구소련 지역, 무국적 재일동포들은 법적으로 ‘동포’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왜 중국 동포들을 ‘재중동포’가 아닌 ‘조선족’이라 부르는지 의문을 가졌는데, 실정법 차원에서 이미 그들을 배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는 중국 동포의 배제를 당연하게 여기고, 귀화한 외국인마저 이질적으로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국가주의적 민족중심주의’로 규정한다. 이는 배제와 통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온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정확히 짚어낸 개념이다.

 

여전히 연령과 계층 간의 불평등, 인종주의적 편견과 폭력, 외국인 차별이 만연한 한국 사회는 과연 저자의 바람처럼 변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한 한국인들의 깊은 성찰과 실천만이 그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의 분노 어린 발언을 인용하며, 한국 사회에 던지는 마지막 질문을 남긴다.

“아니, 백인 미국인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꼼짝도 못하는 사대주의자들이 왜 우리를 늘 짓밟는 겁니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을 가진 민족이, 과연 우리를 지렁이만도 못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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