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8. 22:48ㆍ짧은 생각
14세기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2도가량 내렸다고 한다. 이른바 '소빙하기'에 접어들어 날씨가 너무 추웠기에 농작물은 흉작이었다. 곡물이 부족하니 '대기근'이 닥쳤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흑사병'(페스트)까지 급속히 퍼졌다. 이 시기 유럽 인구의 1/3이 줄어들 정도였다. 이처럼 암울한 시대에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았다. 이 같은 재앙은 악마의 하수인 노릇하는 자들 때문에 퍼졌다는 주장이 사람들에게 먹혀들었다.
당시 교회 고위 성직자들은 심히 타락하였다. 고통받는 민중을 돌보기 보다는 성직매매, 성 추문, 면벌부 판매, 세속 군주들과 교회 내부의 권력 다툼 등으로 교회의 도덕성과 공신력은 크게 실추되었다. 타락한 교회를 더 이상 존중할 수 없다며 저항하는 움직임이 프랑스남부의 랑그도크(Languedoc) 지방에서 발생하고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알비파(또는 가타리 파)로 알려진 이 종파는 이원론, 금욕주의, 성경의 중요성 강조, 성인 숭배와 유물 거부, 평등주의를 강조하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알비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근절하고자 1209년에 알비 십자군(Albigensian Crusade)을 보내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이 과정에서 종교재판이 생겨났고, 이단심문관들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단 심문관들은 '마법'과 '주술'을 사용하는 자들도 이단으로 정죄해야 한다는 요구를 계속하였다. 하지만 교황은 '마녀 사냥'을 허락하지 않다가 1317년 교황 요한 22세가 누군가에게 암살당할 뻔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마녀 사냥'을 전격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범인을 잡고 보니 그는 고위 사제였고 주술을 사용하여 교황을 죽이려 하였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교회는 큰 충격을 받아 '마녀 사냥'을 공식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때부터 '마녀 사냥'이 시작되어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1682년에 마녀 재판을 폐지하는 칙령을 발표할 무렵까지 이어졌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녀 사냥은 끝났다. 그때까지 유럽과 북미에서 마녀 사냥으로 살육 당한 사람은 대략 4만 명에서 6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마녀 사냥은 종교개혁 시기에 가장 극성을 부렸다. 로마 가톨릭은 가톨릭 영토를 더 이상 빼앗기지 않고자 '마녀 사냥'에 더 열을 올렸고, 개신교 지역에서도 마녀 사냥이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어찌하여 이처럼 수백 년 동안이나 '마녀 사냥'이라는 광기에 휩쓸린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몇 가지를 간추리면 이러하다.
첫째,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감추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하였다.
둘째, 흑사병, 기근, 전쟁, 종교개혁 같은 위기가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낳았다.
셋째, 마녀 사냥으로 돈벌이하려는 자들이 무고한 자들을 '마녀'와 '마법사'라고 끊임없이 고발했다.
넷째, 이성에 따른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판단보다는 종교적 신앙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성서에는 '마녀'가 나오지 않는다. 마녀가 악마와 난교 파티를 벌이고, 유아를 살해해 먹으며,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주장은 망상에 불과하다. 중세에는 약초에 밝고 점을 치거나 산파로 일하던 여성들이 주로 '마녀'로 내몰렸다. 샤마니즘, 주술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한 행위를 하는 자들을 모두 마법사, 마녀로 여겨 화형 시킨다는 온당치 않다. 루이 14세는 '다양한 범죄의 처벌에 관한 칙령'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첫째, 주술의 실재를 부정하고 마술과 마법, 마녀 재판을 폐지한다.
둘째, 주술 행위에 대한 처벌은 체형에 그친다.
셋째, 마녀들의 행위는 악마와의 계약이 아닌 단순한 미신이다.
이 같은 칙령이 발표되기 전까지 '마녀'는 아무리 없애도 유럽 도처에 계속 생겨났다. 아니, '마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들어졌다. 극악한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무슨 '자백'인들 못하겠는가? 종교 재판소의 이단 심문관들은 마녀로 낙인 찍힌 사람들을 온갖 방법으로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마녀를 만들어 냈고 그것으로 돈벌이를 하였다.
'마녀 사냥'은 어리석은 중세 시대에나 존재했던 게 아니다. 지금도 다른 형태로 계속된다. 20세기 '빨갱이 사냥'도 새로운 형태의 마녀 사냥이고, 기독교 내의 '이단 사냥'도 그리 다르지 않다. '빨갱이' 또는 '이단'이라 낙인 찍힌 사람은 무슨 항변을 해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한때 '좌익 사상'에 빠져 있었다가 전향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전향했다고 한들 사람들은 그의 말을 곧이듣지 않는다. "한 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라며 그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이단 종파에 빠졌다가 탈퇴하여 나온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마녀 사냥'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지금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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