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권정생이 사랑한 하느님

2021. 5. 20. 08:15생수 한 모금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사시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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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권정생 선생이 사랑한 하나님 - 겨자씨신문

내가 교회에 나가고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가 사랑했던 들꽃 한송이를 나도 사랑하고 싶고 그가 아끼던 새 한 마리를 나도 아끼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구태여 큰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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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회에 나가고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가 사랑했던 들꽃 한송이를 나도 사랑하고 싶고 그가 아끼던 새 한 마리를 나도 아끼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구태여 큰 소리로 외치며 전하는 복음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곁에 함께 있는 가련한 목숨끼리 다독이며 살고 싶을 뿐이다. 슬플 때 함께 슬픈 노래 부르고 기쁠 대 함께 기쁜 노래 부르면, 그것이 찬송이 되고 기도가 되고 예배가 되는 것이다. 구하기 전에 하느님은 우리에게 모든 걸 주셨다.

푸른 하늘과 해와 달과 별과, 철마다 피고 지는 꽃과 나무와 열매들, 아름답게 우는 새소리, 시원한 바람과 깨끗한 물과 그리고 이웃을 주셨다. 검은색과 흰색과 노란색의 사람들이 소로 바라보며 웃으며 살라고 이 땅 위에 각자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거기서 땀 흘려 일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들의 몫이다. 더 이상 무엇을 달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기도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살 만큼 살다가 죽으면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하늘나라며 인간들이 영원히 살아갈 바른 삶이다.> _권정생, “가난한 예수처럼 사는 길,” 『새 가정』 1993

권정생 선생님(1937-2007)을 '아동문학가'나 '동화작가'쯤으로 아는 분이 많습니다. '강아지 똥' '몽실언니' 같이 널리 알려진 작품 때문이지요. 그가 지병인 결핵과 신부전증에도 불구하고 여러 동화를 꾸준히 쓰신 건 사실입니다. 평생 우정을 나눈 이오덕 선생은 권정생을 가리켜 " 다만 동화를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라 말한 적 있습니다. 실제 권정생은 아동문학에 평생을 바치다시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권 선생님을 조금 달리 봅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예언자'였습니다. 그것도 이 나라에 몇 안 되던 예언자 중 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 랍비이자 철학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그의 책 <예언자들>에서 예언자란 하나님의 파토스(pathos)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세상과 하나님의 뜻을 연결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고통, 정의, 사랑을 깊이 헤아리고 느껴 그 열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권정생 선생님이야말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선생은 한국 교회와 사회를 향해 낮지만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치십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그 근원을 헤아려 보라고 말입니다.
 
MBC '느낌표-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 제작진이 <우리들의 하느님>을 선정해 방송하려 했을 때였습니다. 해당 책 출판사인 녹색평론사와 저자 권 선생님은 이를 사양해 세상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당시 권 선생님이 거절한 까닭은 "왜 사람들이 책을 직접 고르는 기쁨조차 빼앗으려 하느냐?"는 취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유명 방송사의 '상업적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일침을 가한 것이지요. 거기에 선정되기만 하면 수십 만 권이 단숨에 나가던 시절인데 한사코 그걸 거부하니 방송사 제작진은 아마 이해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얼마 전에야 권 선생님의 마지막 시기 모습을 임희국 교수님(장신대 명예)에게 들었습니다. 임 교수님은 학생들을 데리고 권 선생님을 찾아간 적 있다고 합니다. 선약하고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권 선생님은 병세가 악화돼 자신의 집을 떠나 동네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생활하고 계셨답니다. 옛 종지기 할 때 생활하던 그 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방 문을 열어 보니 선생님은 누워 천정을 겨우 바라보고 계시더랍니다. 한편에는 라면 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요. 생애 마지막까지 가난하고 힘겹게 연명하고 계셨던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임 교수님에게 밑도 끝도 없이 한 마디 하시더랍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왜 성도들을 버리고 월남하셨습니까?"
 
아마 장신대 교회사교수님이란 사실을 알고 물으신 거겠지요. 임 교수님은 대답을 듣고자 물으신 건 아니라는 생각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권 선생님은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도 생애 마지막까지 예언자적 목소리를 그치지 않으신 분입니다. 
 
선생님은 말년에 오랜 세월 다니던 교회에 발길을 끊으셨습니다. 몸이 몹시 불편하신 탓도 있었지만 ‘가난한 예수’의 가르침은 없고 친미, 기복, 부흥만을 앞세우는 목회자들 설교를 더 이상 인내하며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물론 예수를 떠난 건 아니었습니다. 요즘 말로 ‘가나안 교인’이 되었을 뿐, 권 선생님은 마지막 숨질 때까지 진실한 예수 따르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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