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3. 11:59ㆍ책 읽기
김호경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가 여는 해석의 지평

종교마다 지닌 경전은 신자들로 하여금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더욱이 그 경전 자체도 강하게 신성시되기 마련이어서, 단순한 책의 수준을 넘어 신비한 능력이 깃든 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례도 많다. 가령 고등학교 시절 신실한 믿음을 지녔던 내 친구 하나는 시험 전날 밤마다 성경책을 베고 자곤 했다. 그러면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이 잊히지 않고 시험을 잘 보게 된다는 믿음에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종교적 경전에 대한 이러한 지나친 믿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들은 이야기이지만, 어떤 무당은 예수 신이 내려왔다며 성경책을 신주(神主)처럼 모셔 두고 점을 치기도 한다고 한다. 종교적 경전에 대한 신성화가 희화화된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김호경의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성서에 대한 그릇된 종교적 아우라를 벗겨내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한다. 다시 말해 성서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시도다. 저자는 성서가 정경으로 확립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한편, 그 제도화 과정이 낳은 문제점들 또한 차분히 짚어준다.
신약성서만 놓고 보더라도, 처음부터 복음서 저자들이나 사도 바울이 ‘성경’을 쓰겠다는 의도로 글을 남겼을 리는 없다. 그들은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내거나, 구전되어 오던 예수의 이야기와 자료들을 수집해 정리했을 뿐이다. 이러한 문서들이 오랜 세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읽히고 사용되다가, 교회회의를 거쳐 기독교의 경전으로 받아들여지는 제도화의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원본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 “일점일획도 틀림없고 영감이 서려 있다”는 성경 무오 교리와 축자영감설에 매달리는 태도는,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들고 만다. 저자는 성서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면서,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에게 성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해석학의 도움을 받아 성서를 읽는 몇 가지 중요한 지평을 소개한다.
해석학이라고 해서 미리부터 주눅 들거나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지나간 바람은 춥지 않다”는 말이 있듯, 이미 2,000년의 긴 세월이 흐른 성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그 의미를 새롭게 되살리는 작업, 곧 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제1장 성서를 향해서’, ‘제2장 성서 안에서’, ‘제3장 성서로부터’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개괄적 안내를 제공하고, 2장과 3장에서는 신약성서의 예수 이야기를 중심으로 복음서들 사이의 상충된 내용에 담긴 의미와 예수 가르침의 핵심을 풀어낸다.
실제로 우리가 복음서를 찬찬히 읽다 보면, 동일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상 적지 않은 차이를 발견하며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과연 누구의 기록이 더 정확한가”, “왜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예컨대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보자.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가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으로 묘사된다. 또한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여인이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다고 전하는 반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발에 붓는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누가복음>은 그 여인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요한복음>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로 특정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이러한 사례를 통해 저자는 성서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하나로 묶여 있으되 결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임을 환기시킨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종합 선물 세트’처럼 보이지만, 각 책의 독립성을 무시한 채 무조건 하나의 이야기로 꿰맞추려는 해석은 무리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저자는 성서를 다양성과 통일성의 변증법 속에서 이해할 것을 요청한다.
결국 저자는 성서학자로서, 성서가 인간을 배제한 초월과 신비의 영역에 놓인 책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임을 강조한다. 성서의 주인공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 맺으며 끊임없이 믿음의 여정을 걸어온 인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성서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과 기독인들에게 훌륭한 안내서가 될 만하다. 내용은 학문적이되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문고판으로 제작돼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가 신약성서학자이다 보니 성서 전체를 신약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독자에 따라서는 ‘성서를 반쪽만 다룬 것이 아닌가’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듯, 책 말미의 부록에서는 성서를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참고 서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서를 향한 길잡이로서 충분히 값진 역할을 해낸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미국은 왜 전쟁에 집착하는가? (0) | 2026.01.23 |
|---|---|
| 조화로운 삶으로 가기위한 원칙들 (1) | 2026.01.23 |
| 성서는 어디에서 왔는가 (2) | 2026.01.22 |
| 신앙과 생태, 다시 읽는 창조 (2) | 2026.01.22 |
| 수도원 기행과 회심의 거리 (0) | 2026.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