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명성황후,' 그 진실은?

2024. 9. 8. 23:06영화평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 김용균 감독)은 대한제국 시절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권력다툼을 배경으로 호위무사 무명(조승우 분)과 자영(명성황후, 수애 분)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그 시절, 중전마마가 한가하게  호위무사랑 연애를 한다? 대체 이런 발상은 어찌 가능하였을까? 위키백과에서 '명성황후'를 찾아보니 터무니없는 상상만은 아니었다. 

 

임오군란, 곧 구식 군대가 처우에 불만을 품고 봉기하였을 때 명성황후를 비롯한 민 씨 척족들은 몹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명성황후 외척인 민씨 척족들이 구식 군대에 지급해야 하는 쌀에 모래를 섞어 지급하는 못된 짓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명성황후는 '사인교'라는 작은 가마를 타고 궁궐을 빠져나가던 중 봉기군에 걸렸다.

 

그 순간 무예별감 홍재희가 명성황후를 "상궁으로 있는 내 누이"라고 그들을 속여 명성황후를 업고 달아났다고 한다. 또한 홍재희는 을미사변 때 광화문에서 일본군을 막다가 총탄을 맞아 전사하였다. 그는 궁궐 수비를 맡은 무관으로서  명성황후를 살리고자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하다 숨진 것이다. 

 

영화에서는 살인청부업자 출신 '무명'에게 홍재희의 역할을 부여한다. 무명은 자신의 무술 솜씨를 시험해 보고자 호랑이를 때려잡을 정도 호기로운 인물이자 조선 최고의 검객으로 나온다. 이런 그가 중전마마로 간택받은 '자영'을 깊이 사랑한 나머지 호위무사를 자처하여 끝까지 지키려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다. 

 

감독은 일본인 낭인들에게 처참히 암살당한 명성황후의 최후를 몹시 안타까이 여긴 것 같다. 그래서 그녀를 죽을 구덩이에서 건져낸 적 있고 마지막까지 지키려다 전사한 홍재희란 인물에 주목해 상상력으로 '두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연애담을 곁들여 영화를 만든 걸로 보인다.

 

이 영화를 본 뒤 명성황후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다가 동학운동을 이끈 전봉준 장군 관련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봉준 장군은 대원군의 문객으로 지낸 적 있고 대원군과 가까웠으며 동학운동을 일으키기 전에 둘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있었으리라는 소문이 파다했다는 점이다. 전봉준과 김개남은 동학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두 장수이다. 그중에 김개남은 전봉준의 명성에 가려져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노선은 사뭇 달랐다. 전봉준은 왕정체제를 인정하고 부정부패를 개혁하자는 거였고, 김개남은 조선왕조가 뿌리째 썩었으니 왕정을 끝장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정도의 차이는 알았으나 전봉준 장군이 대원군의 문객으로 지냈을 정도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그동안 잘 몰랐다. 대원군이 전봉준의 동학군 봉기를 어느 정도 지원해 주었는지 밝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명성황후의 인물평이 극명하게 엇갈리는데 진정 명성황후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일본측에서 명성황후를 폄훼하고 조롱하는 거야 그렇다쳐도, 매천 황현 선생 같은 분도 명성황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사실은 감출 수 없다. 왕실 재정이 파탄날 정도인데도 명성황후는 세자를 얻게 해 달라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금강산 봉우리마다 제사를 모시곤하였다고 한다.

 

이런 명성황후가  정상적 사고를 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까? 더욱이 그는 자신의 외척과 대원군의 반대 세력을 대거 끌어 들여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러다 힘에 부치자 청나라, 러시아, 일제까지 끊임 없이 줄을 댔고 외세를 끌어 들여 결국 나라를 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명성황후를 알현한 당시 서양 여성들, 지리학자를 비롯한 여성 선교사 등은 명성황후를 영특하고 우아하며, 외교력이 탁월한 여성이라 평가한다. 과연 명성황후의 참 얼굴은 무엇일까? 

 

돌이켜 보면 대원군이나 명성황후나 권력다툼을 하느라 나라 망하는 줄은 잘 몰랐던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알았을지라도 그들은 백성을 걱정하거나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온통 '권력 쟁취'에 골몰하였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동학운동이 발발하자 외세를 끌어들이고  자신의 친인척을 동원해 부정부패를 일삼은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원군과 명성황후 중에 명성황후가 더 영리하였던 모양이긴 하다. 고종은 아버지와 부인, 외세 사이에 끼어 자신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의 극치를 보인 왕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대한제국'과 '황제,' '황후'란 명칭이 무색할 정도 그 시절 이나라 왕실과 국체는 한심한 상태였다. 5백 년 넘게 이어온 왕실이 겨우 그 수준이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조정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몰라도 너무 몰랐다. 눈과 귀를 닫고 딴 세계를 살고 있었던 거다. 조정이 사색당파와 외척이 득세해 이전투구하는 동안 외세는 좋은 먹잇감을 만났다는 듯이 너도 나도 뛰어들어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나? 이 엄혹한 시절에 정부와 야권, 민초들은 과연 정신 바짝 차리고 있는 건가? 자신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윤 정권의 사오정 같은 국정운영과 친일, 친미 일변도의 외교정책, 터무니없는 정책 난발, 고위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 정치 검찰의 패악질이 극에 달해 있어 나라가 휘청거리는 조짐이 보인다. 구한말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지 심히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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