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중독'은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나?

2024. 8. 11. 23:21영화평

누페 왕국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개선장군 가아

 

오요 제국에 대해

 

넷플릭스 영화 <킹메이커 가아 House of Gaa>는 18세기 나이지리아 서남부와 서북부 지역에 있던 '오요제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오요제국은 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 제국은 특히 16세기부터 크게 성장하여  북아프리카와 유럽까지 교역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오요 제국의 수도는 오요일레였고 이곳은 황제가 거주하였고 종교,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오요제국은 황제를 '알라핀'(Alafin)이라 칭합니다. 이는 요루바어로  '제왕' 또는 '궁전의 주인'이란 의미입니다.

 

오요 제국에는 귀족인 일곱 명의 '오요 메시'(제국의 조언자, 또는 제국의 평의원이란 뜻)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알라핀의 통치에 조언하거나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곱 명의 오요 메시의 수장은 '바쇼룬'("우두머리 책임자" 또는 "결정권자"라는 뜻)이었습니다. 바쇼룬은 일곱 명의 오요 메시를 대표하며 제국의 중요 정책을 조율하고 알라핀이 잘못할 때는 폐위시킬 권한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묘 메시는 로마제국으로 치면 원로원에 해당하고 바쇼룬은 원로원의 대표 격인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막강한 권력자라 볼 수 있습니다. 

 

                                                        바쇼룬에 오른 뒤 큰 아들 올라오탄과 대화하는 가아

 

영화의 서두는 오요 제국과 누페 왕국 군대의 전쟁 장면을 다룹니다. 누페 왕국은 오요제국의 북쪽에 있던 왕국입니다. 오요 제국은 북쪽의 누페 왕국과 서쪽의 다호메이 왕국을 복속시켜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누페 왕국 군대와 접전을 벌여 대승을 거둔 오요 제국 군대 지휘관은 가아였습니다. 가아가 개선장군으로 돌아오자 알라핀은 그에게 '바쇼룬'을 맡깁니다. 당시 가아는 이미 자기 영지를 가진 오요 메시 중 한 명으로 보입니다. 

 

가아는 '바쇼룬'이란 지위에 오른 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합니다. 먼저 그는 전쟁 포로 중 한 명인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삼습니다. 그에게는 이미 본처와 후처들이 있는데도 또 다른 애첩을 들인 겁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라핀이 서거하였고 새 황제를 뽑아야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가아는 여러 알라핀을 세웠다가 폐위시키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자연스레 자신이 알라핀 위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가아는 새 알라핀을 오라고 불러서 자기 앞에서 무릎 꿇으라고 요구하기도 할 정도로 오만하게 굴었습니다. 오죽하면 알라핀 중에는 가아의 압력과 간섭, 치욕에 견딜 수 없어 자결하는 사람들마저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알라핀을 불러 엎드려 절하라는 가아  가아는 한밤 중에 알라핀 아원비오주를 자신에게 오라해 납작 엎드려 절하라고 요구한다. 알라핀이 궁을 떠나 사적인 만남을 갖는 것을 금기였다. 알라핀 아원비오주는 그 금기를 깨고 가아를 만나긴 하였으나 절하라는 요구는 거부했다. 그러자 가아는 그를 암살한다.

가아는 왜 '알라핀'이 되려 하지 않고 '바쇼룬'에 머물며 이 같은 짓을 하였을까요? 오요제국에서 알라핀이 되러면 일정한 혈통의 자격이 필요하였습니다. 가아는 알라핀이 될 수 없는 혈통이었나 봅니다. 그는 알라핀을 견제해야 하는 바쇼룬입니다. 만일 그 직위를 내려놓고 알라핀이 되면 알라핀 견제를 포기하는 행위나 다름없게 비쳐져 차마 그러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더욱이 가아는 사실상 알라핀보다 더 큰 권력자였습니다. 굳이 허울과 상징에 불과한 황제 '알라핀'의 지위에 오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흰 코끼리의 몰락

 

가아가 바쇼룬이 되었을 때 그를 돕는 주술사는 "앞으로 모든 백성은 가아의 말에 절대복종해야 한다"고 공포합니다. 이어 "가아는 흰 코끼리가 되어 숲을 다스릴 것이며 앞으로 누구도 그에게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예언처럼 가아는 상당 기간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가 여러 알라핀을 세워 능멸하거나 폐위시켜도 그것을 제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요 메시들의 불만은 암암리에 갈수록 쌓였습니다. 

 

가아의 전횡의 정점은 영화의 화자로 나오는 가아가 자신의 막내 아들 오예메쿤의 애인 아그보인을 가로챈 장면입니다. 가아는 아그보인이 아들 오예메쿤의 애인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을 자신의 동생 올루코예와 혼인시켰습니다. 그 뒤 올루코에가 죽자, 그의 부인 아그보인을 자신의 새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것만도 놀라운데 더욱 큰 충격은 혼인 직후 그 새 아내를 희생제물로 삼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날 가아는 갑작스레 하반신 마비를 일으켜 제대로 걷지조차 못하였습니다. 그의 주술사는 하반신 마비 치료를 위해서는 가아의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를 희생제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가아는 그 여인을 아내로 삼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아그보인 부인  가아의 동생 올루코에와 결혼해 아기를 낳은 아그보인 부인. 영화 '가아'의 화자이자 가아의 막내 아들 오예메쿤의 애인이었으나 가아의 동생 올루코에와 결혼하였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가아와 재혼한다. 하지만 가아는 자신의 건강 회복을 위해 그녀를 희생제물로 삼는다.

 

덕분에 가아는 신기하게도 하체 힘을 되찾아 조금씩 걷게 되긴 하였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이전처럼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진 못하였습니다. 가아의 독재와 전횡에 시달리다 못한 오요 메시들은 마침내 가아를 제거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봉기하여 가아를 체포해 화형에 처하였습니다. 이로써 오요 제국은 평온을 되찾았으나 가아가 통치기간 저지른 사건들의 후유증은 그 뒤까지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오요 제국은 내분과 쇠퇴를 거듭하여 끝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권력중독이 낳은 비극

 

이 영화에서는 18세기 아프리카 오요 제국의 종교와 제의, 주술사들의 활동을 간간이 보여줍니다. 이는 기존 동아시아나 서구유럽 영화들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이라 흥미로웠습니다. 가아 적대 세력의 주술사들은 여러 센 '방법'으로 가아가 맥을 못 추게 만들어갑니다. 그게 효과가 있어 가아는 하반신 마비를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그 뒤부터 가아의 권력도 급속히 누수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가아는 용감한 사령관 출신이었으나 바쇼룬이란 지위에 오른 뒤 차츰 판단력을 잃고 자꾸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합니다. 그는 더 이상 지혜로운 조언자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요 제국의 오랜 전통과 문화조차 함부로 무시하곤 하였습니다. 컵에 물이 가득 찬 뒤에는 넘쳐흐르게 마련입니다. 가아는 자신의 능력 이상의 권력을 손에 쥐자 주체할 수조차 없는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 자신과 가족, 나아가 오요제국 자체를 몰락의 길로 이끌고 말았습니다. 

 

서아프리카 오요 제국의 역사는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19세기에 이르러 문자가 전해져 선교사들과 요루바족 학자들이 기록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또한 고고학적 발굴로 당시 군사적 규모, 문화와 경제 수준 등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아'란 인물은 오요 제국 말기 상황을 잘 알려주는 중요한 인물로 보입니다. 그의 오만한 독재는 18세기말 아프리카에서나 가능하였던 사례는 아닙니다. 가아는 권력중독에 빠진 자의 좋은 사례 중 하나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은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권력욕과 그 중독이 얼마나 추악한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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