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9. 09:27ㆍ시사 톺아보기
1978년 3월 26일 새벽 5시 40분경,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신교 17개 교단 약 45만 명의 신자가 모인 가운데 부활절 연합예배가 진행되던 중이었습니다. 기도 순서를 맡은 한 목사가 마이크 앞에서 한창 기도할 무렵, 갑자기 그 소리가 뚝 그치고 잠시 소음이 들리더니 몇몇 여성이 외치는 구호가 스피커로 흘러나왔습니다.
“동일방직사건 해결하라,”“방림방적 체불노임을 즉각 지불하라,” ”가톨릭노동청년회와 산업선교회는 빨갱이가 아니다”
여성 노동자 여섯 명이 단상을 기습 점거하고 기도하던 목사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아 외친 구호였습니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치안 기관 간부가 “중계 스위치를 꺼라”라고 하더니 “저X들 끌어내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자 기관 요원들이 뛰어 올라가 여성 노동자들을 마구 구타하며 끌어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여섯 여성노동자는 “우리도 인간이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 “박정권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끌려 나갔습니다. 불과 5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끌려 나가자 부활절연합예배는 계속되었습니다.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는 1947년부터 줄곧 이어졌습니다. 70년대 말에는 수십만 명이 모일 정도 대형집회로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대변하거나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의 기도, 찬송, 설교는 당시 비참한 사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여성 노동자 여섯 명이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단상을 기습 점거하여 마이크를 잡고 외친 겁니다.
그들은 방림방적, 남영나이론, 삼원섬유, 동일방직 등에 다니며 산업선교회에 드나들던 20세에서 24세의 정명자(20), 김복자(24), 김정자(22), 김현숙(20), 장남수(20), 진해자(23)였습니다. 그 중에 정명자(당시 20세)는 목포 출신으로 인천 만석동 판잣집의 한 방에서 8식구가 생활하던 중이었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구치소에 면회 온 아버지에게 “저 같은 딸을 가진 걸 행복하다고 생각하십시오. 이런 시대에 호적에 붉은 줄 없는 걸 부끄럽게 생각해야 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602-605쪽, 노동현장과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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