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파인 힐렐파와 샴마이파의 공통점과 차이점

2024. 3. 28. 09:40기독교 이해

바리새인들은 제2성전 시대에 유대교 내에서 두드러진 종파였으며, 종교적인 율법과 전통을 엄격하게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리새인들 중에는 학자 힐렐 (Hillel, 주전 1세기 중후반~주후 10년경) 과 샴마이 (Shammai, 주전 50 – 주후 30)와 관련된 두 가지 저명한 사상 학파가 나타났습니다. 힐렐이 산헤드린 의장일 무렵 샴마이는 산헤드린에 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힐렐이 죽은 후(서기 10년경) 샴마이(Shammai)가 그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샴마이 학파는 절대 우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샴마이 이후인 서기 30년 힐렐의 손자 가말리엘이 산헤드린 의장이 되었으나 산헤드린은 서기 70년까지 샴마이파가 주도하였습니다. 힐렐파와 샴마이파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사점:

1. 바리새파 배경: 힐렐파와 샴마이파는 둘 다 유대교 내에서 더 넓은 바리새파 운동의 일부였습니다. 그들은 유대 율법과 전통을 세심하게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공유했습니다.

 

2. 토라에 대한 헌신: 두 학교 모두 토라(히브리어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와 기타 유대 경전의 연구와 해석에 깊이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삶을 인도하는 데 있어서 할라카(유대인 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3. 구전법에 대한 믿음: 두 학교 모두 구전법의 권위를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에는 기록된 토라와 함께 대대로 구전으로 전해지는 해석과 전통이 포함되었습니다.

 

 

차이점:

 

1. 할라카의 해석: 힐렐과 샴마이는 종종 할라카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여 서로 다른 법적 판결과 관행을 초래했습니다. 힐렐은 해석에 있어서 좀 더 관대했던 반면, 샤마이는 일반적으로 좀 더 엄격했습니다.

 

2. 이방인에 대한 접근: 힐렐과 샴마이는 이방인(비유대인)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힐렐은 더욱 포용적이고 환영적이며 이방인에 대한 보다 화해적인 접근 방식을 옹호했습니다. 반면에 삼마이는 좀 더 배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이방인과의 상호 작용에 있어서 분리와 유대인 율법의 엄격한 준수를 강조했습니다.

 

3. 성격 특성: 힐렐과 샤마이는 개인적인 태도와 교육 방식이 종종 대조됩니다. 힐렐은 인내심이 많고 온화하며 동정심이 많은 사람으로 묘사되는 반면, 샴마이는 엄격하고 단호하며 서로 다른 의견을 덜 관용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4. 법적 불일치: 탈무드는 결혼과 이혼에서 순결 의식과 안식일 준수에 이르기까지 유대법의 다양한 문제에 관해 힐렐과 샴마이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법적 분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혼과 안식일 준수에 있어 힐렐은 동정심과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어 더 관대한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반면 샴마이는 엄격한 준수를 강조하였습니다. 두 학파의 논쟁은 종종 법적 방법론과 신학적 관점의 더 넓은 차이를 반영합니다.

 

전반적으로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는 모두 바리새파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토라 연구와 준수에 대한 공통된 약속을 공유했지만, 법적 해석, 비유대인에 대한 태도, 교육 및 리더십에 대한 개인적인 접근 방식에서는 서로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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