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22. 18:27ㆍ성서화 감상

물 위를 걸어오는 사람
오병이어 이적, 곧 예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훨씬 넘는 군중을 먹이신 이적을 행하신 뒤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에 태워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시고 군중을 모두 헤쳐 보내신 뒤 자신은 홀로 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날은 저물었고 제자들이 타고 가던 배는 풍랑을 만나 이리저리 요동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많은 시간이 흘렀나 봅니다.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새벽 무렵까지 호수 중간쯤에서 맴돌았던 모양입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제자들이 탄 배는 25-30 스타디아쯤(약 5-6km) 나아간 상태였다고 하였습니다(요 6:19).
그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아직 어두컴컴한 이른 새벽,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 오시자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습니다. 거친 풍랑으로 큰 파도가 치는 호수에서 제자들이 탄 배는 나뭇잎처럼 뒤흔들렸습니다. 그 사이 뒤쪽에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 다가 오시자 제자들은 소름이 끼쳤을 겁니다. 그분은 자신들이 스승 삼아 따르던 예수님이셨는데도 제자들은 안심하기는커녕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신들의 스승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령'이 아니고서야 사람이 물 위를 걷는다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그 상식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았기에 다들 두려워 비명을 질러댄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마 14:27)고 제자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자신이 '유령' 같은 '헛깨비'가 아님을 밝혀 제자들이 경계심을 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는 아직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물 위를 걷게 하소서
바로 그때였습니다. 베드로가 "정말 주님이시거든 나더러 물 위를 걸어 주님께 오라고 명령하소서"(마 14:28)라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뜬금 없이 왜 이런 요청을 하였을까요?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께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베드로처럼 요청한 제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유독 베드로만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주님께 요청한 겁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런 요청을 한 사실은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도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의 이적을 보도합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예수님께 요청하여 잠시나마 물 위를 걸은 사실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태복음은 어찌하여 다른 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을 전해 주는 걸까요? 마태복음은 베드로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복음서라서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하자, 마태복음의 예수님은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 16:9)며 그를 크게 칭찬하십니다. 베드로를 특별한 제자로 두드러지게 하는 이 내용도 마태복음서에만 나옵니다. 예수님은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는 베드로의 요청을 받으시고는 "오너라!"(마 14:29)고 명하십니다. 베드로의 말 대로 그에게 "오너라!"고 명하신 분이 예수님이 아니라면 그는 첫 발부터 물에 풍덩 빠지고 말았을 겁니다. 다행히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몇 발자국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예수님만 물 위를 걸으신 게 아니라 베드로도 조금이나마 물 위를 걸은 겁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 속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걸어야 할 텐데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느라, 예수님이 앞에 계심을 깜박한 나머지 '두려움'이 엄습하였고 그 순간 물에 빠지고 만 겁니다. 그제야 베드로는 "주님,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쳤습니다(마 14:30). 그는 어부 출신이라 헤엄칠 줄 알았을 겁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약 100m쯤 떨어진 뭍에 서 계심을 보고 곧장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 그 곁으로 나아갔겠지요(요 21:7). 하지만 거센 풍랑이 치는 호수 한 복판에서는 아무리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라도 물에 빠져 살아나긴 힘들 겁니다. 베드로는 잠시나마 물 위를 걷기는 하였으나 거센 바람을 보다가 물에 빠져 죽을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풍랑을 헤치고 가는 길
화가 알렉산드로 알로리(1535-1607)의 '물 위를 걷는 베드로'란 작품은 예수님이 물에 빠진 베드로를 구해내시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베드로는 두 손으로 예수님의 오른 손을 잡고서 그분을 우러러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왼손 검지로 베드로를 가리키며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고 책망하시는 순간 같습니다. 두 분 뒤쪽으로는 파도치는 가운데 제자들이 작은 배를 타고서 힘겹게 노를 젓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자들이 있는 곳과 달리 예수님과 베드로가 선 곳에는 파도가 그리 크게 치지는 않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 파도조차 누그러진 상태라 그러지 않을까요? 베드로의 오른발 뒤쪽과 왼발 무릎 앞쪽에 작은 파도만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런 작은 파도 앞에서도 겁을 집어먹고 의심하다가 물에 빠진 거라고 화가 알로리는 이해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인생에서 사람을 넘어뜨리는 건 '거센 풍랑'보다는 비교적 '작은 파도'일 때가 적지 않습니다. 눈에 띄는 거센 풍랑을 보면 대책을 세우고 마음을 굳세게 하여 헤쳐 나가려 힘씁니다. 반면 '작은 파도'가 계속될 때는 방심하다가 오히려 물속에 빠져 들고 마는 겁니다. 베드로는 거센 풍랑을 헤치고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나아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잘 걸어가더니만 '[거센] 바람'이 불어오자,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나아갈 때 이미 바람과 파도는 계속되던 중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베드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 위를 걸어간 겁니다.
그런데 문득 '거센 바람이 불어 오는 걸 보자' 예수님이 더 이상 안 보였습니다. 그러자 곧 그는 물속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마치 외줄 타기 곡예사가 줄곧 잘 걷다가 바람 소리에 놀라 아래를 쳐다보고는 아찔하여 발을 헛디디는 순간과도 같습니다. 이는 베드로나 저지르는 실수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누구라도 잠깐 의심하여 흔들리거나 넘어질 수 있습니다. 거친 풍랑이 몰아치는 인생의 호수에서 어찌할 줄 몰라 암담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구하러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그분을 '유령'이라 오인하거나 의심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지는 말아야 합니다. 인생에서 풍랑 자체가 없기를 바랄 수도 없습니다. 우릴 구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바로 보고 그분을 향하여 꿋꿋이 나아가면 그 모든 거친 풍랑도 어느덧 물러가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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