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난민, 혐오와 환대 사이에서

2024. 1. 16. 14:28성서화 감상

오라초 젠틸레스키(Orazio Genilleshi, 1563-1639), 이집트 피신 중 휴식(1628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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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난민, 혐오와 환대 사이에서 - 겨자씨신문

난민 혐오와 환대 사이지난 2018년 이른바 '제주 난민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예멘인 5백여 명이 제주도에 무비자로 입국해 난민신청을 하였습니다. 당시 예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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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혐오와 환대 사이

 

지난 2018년 이른바 '제주 난민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예멘인 5백여 명이 제주도에 무비자로 입국해 난민신청을 한 거였습니다. 당시 예멘은 내전으로 정세가 무척 불안정하여 자국을 탈출한 사람들이 난민 신청을 하고자 제주도로 들어왔습니다. 제주도는 30일까지 무비자 입도가 가능한 특별자치도라 그런 정보를 알고 들어온 겁니다.

 

이들 예멘인이 제주에 와서 난민신청을 하자 사회적인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중에 특히 보수 기독교인들의 예멘인 난민 유입 반대 운동까지 벌였습니다. 그들의 주요 주장은 제주에 대거 들어와 난민신청을 한 예멘인은 모두 무슬림이며 무슬림이 이슬람교를 퍼뜨리고자 의도적으로 들어온 거고 이들은 테러의 위험이 있기에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가짜뉴스에 현혹된 거고 일종의 '이슬람 혐오'에 따른 과민 반응이었습니다. 

 

물론 국내 기독교인 중에는 예멘인의 난민 수용 반대만 외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는 여수지역에는 아프간 특별기여자 29 가족 157명이 지난 2022년 들어와 여수해양경찰교육원에서 자립 생활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때 지역의 몇몇 교회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지원하며 사랑을 나눈 사실이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기독교인 중에서도 예멘 난민신청자와 아프간 난민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프간도 이슬람 국가이기에 아프간 특별기여자들도 무슬림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도 난민 출신

 

난민은 자국의 정치적 불안정, 전쟁, 자연재해, 종교적 박해 따위로 생겨납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 가족도 이집트로 피신하여 거기서 한동안 살았다고 전해 줍니다. 헤롯대왕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가 있다(마 2:2)는 사실을 동방박사들에게서 전해 듣고는 "베들레헴과 그 인근에 사는 두 살 이하 남자 아기를 모두 죽이라"(마 2:16) 지시하였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자신의 아들이 아닌 어떤 아기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라고 겁이 더럭 났을 겁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어 왕위에 오른 자가 아닙니다. 그의 부친 때부터 로마제국에 아부하고 절대 충성하여 유대왕국의 왕위에 올라 다스린 자(주전 37-4년)입니다. 헤롯은 유대인이긴 하였으나 이두매 출신이라  이방인 피가 섞인 사람입니다.

 

주전 2세기경 하스몬 왕조의 요한 힐카누스는 이두매를 무력으로 복속한 뒤 주민들을 유대교로 강제 개종시켰습니다. 이방인이던 이두매 사람들은 그리하여 유대교인이 된 겁니다. 유대인들은 같은 유대교 신자라 해도 이두매인들을 괄시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두매 출신 헤롯이 로마제국의 권세에 힘입어 유대 왕국의 왕이 되자 그걸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하였습니다. 

 

헤롯 자신이 선정을 베풀어 유대인들의 환심과 충성을 이끌어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폭정을 일삼던 자였고 아내와 자녀들마저 믿지 못하여 죽일 정도로 잔인한 자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폭군이었습니다. 헤롯이 메시아 탄생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과 그 인근 두 살 이하의 아기를 모조리 죽였다는 마태복음의 기록은 당시 그의 잔혹한 통치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다행히 요셉은 꿈에 나타난 천사의 지시대로 아내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 길을 떠났습니다. 이때 이집트로 피하지 않았다면 아기 예수도 헤롯의 칼날에 죽임 당하였을 겁니다. 베들레헴에서 이집트까지는 도보로 일주일 이상 걸리는 상당히 머나먼 거리입니다. 더욱이 갓 태어난 아기 예수와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가는 길이라 요셉은 빠른 속도로 가지는 못하였을 겁니다. 이처럼 왕의 정치적 학살을 피하여 타국으로 피신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난민'에 해당합니다. 예수님 가족도 이집트로 망명한 난민이나 다름없었던 겁니다. 

 

 

이집트 피신 길에서

 

17세기 화가 오라초 젠틸레스키가 그린 '이집트 피신 중 휴식'이란 작품은 이집트로 가는 도망치는 도중 잠시 쉬는 예수님 가족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무척 고단하였던지 자루 위에 드러누워 곤히 자는 중입니다. 마리아는 아기 예수에게 젓을 물리고 있습니다. 이들 가족은 창문이 달려 있지 않아 바깥이 훤히 내다 보이는 어떤 창고 같은 빈 건물에서 겨우 이슬만 피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바깥 풍경은 우중충하여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합니다. 시간은 새벽인지 아니면 초저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처 없이 머나먼 이국을 향해 도망쳐야 하였던 예수님 가족의 안쓰러운 상황을 이 그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집트는 유대인들이 가고 싶어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이집트로 돌아가지 말라"는 명령을 거듭하십니다(민 14:1-7; 신 17:16; 렘 42:19). 이집트로 되돌아가는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집트는 파라오가 통치하는 어둠의 왕국 곧 우상숭배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가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천사'의 지시를 받아 이집트로 갑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엄밀히 말하면 예수님 가정은 이집트로 '되돌아' 간 게 아닙니다. 헤롯대왕의 학살을 피하여 피신한 겁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이집트였을까요? 예수님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한 까닭은 돌아오기 위함입니다. 이집트로 들어가는 데 방점이 있는 게 아니라, 유대 땅 갈릴리로 되돌아오는데 더 초점이 있습니다. 마태는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호 11:1)는 호세아 예언을 이루고자 이집트로 간 거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오신 분입니다.

 

따라서 마태는 예수님에게 출애굽 사건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시도한 걸로 보입니다. 즉 예수님과 그의 부모는 헤롯대왕이 죽은 뒤에 어둠의 땅 이집트를 탈출하여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 뒤 헤롯 아켈라오가 통치하는 유대 지방을 곧 떠나 갈릴리 나사렛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가져오신 구원의 빛이 변방 갈릴리 나사렛에서부터 동터온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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