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1. 15:44ㆍ카테고리 없음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에 나타난 권력·신화·득도의 서사
황제라는 이름의 무게

자신을 과도하게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을 비꼬아 흔히 ‘왕자병’, ‘공주병’이라 말한다. 개인의 개성과 자기표현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의 잘난 면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품게 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문열의 소설 『황제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황제는 그런 자기 도취적 소인배들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 그는 자기 과시의 욕망에 취한 인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천명(天命)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황태자가 되었고,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거치며 자신의 ‘황제됨’을 체현해 나간 인물이다.
황제는 황제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집요함과 순수한 열정만큼은 그를 사이비 종교의 교주나 망상에 사로잡힌 동키호테로 단순 평가하기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역할과 소명을 끝까지 밀고 나간 인물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동양적 세계관이 낡고 무용한 것으로 치부되는 현대 사회를 향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실제로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저자의 깊은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서사로 풀어내는 상상력에 적잖이 감탄하게 되었다.
황제의 세계관과 현대의 빈곤
작품 속 황제는 현대를 살면서도 마치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인물이다. 그는 동양 사상에 깊이 천착해 있으며, 그 결과 그의 눈에 비친 현대 사회의 많은 사조와 담론은 이단사설이나 잡설로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자칫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런 성찰 없이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이는 현대 한국 지식 사회의 태도 또한 결코 건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타 문화와의 대화를 거부한 채 폐쇄적인 세계에 머무는 삶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다. 과거와 현대, 동양과 서양 그 어디와도 대화할 수 있는 열린 체계가 필요하다. 다만 그 대화는 오늘과 내일을 더 올바르게 가꾸기 위한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현실을 돌아보면, 자기만의 폐쇄회로 속에 갇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진보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패러다임의 전환과 변화에 대한 감수성은 필수적이다. 동시에 새로움에만 집착하는 것도 또 다른 병이다. 전통을 성찰적으로 계승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 바로 그 균형이야말로 황제의 세계관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일 것이다.
신화와 광기 사이
황제는 분명 광기를 지닌 인물이다. 그 광기는 때로 과도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확신 없는 이성만으로는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일을 해내기 어렵다. 히틀러, 나폴레옹, 알렉산더, 레닌, 김일성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일종의 ‘광기’를 품은 인물들로 점철되어 왔다. 이들은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었고, 무엇보다 그 신화를 실제로 믿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확신에 찬 실천이 가능했다.
종교의 광기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종교가 때때로 혹세무민으로 흐르는 이유 역시 왜곡된 신화와 광기 때문이다. 신화는 그것을 믿는 이들에게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 된다. 그렇다면 신화는 모두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신화의 성격에 따라,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신화가 혼탁한 세계에 의미와 방향성을 부여한다면, 그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롤랑 바르트가 지적했듯, 현대 사회의 광고와 이미지 역시 신화의 기제를 작동시킨다. 인간은 계몽시대의 이성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오히려 건조한 합리성의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신화를 갈망해 왔다. 다만 문제는 어떤 신화인가이다. 상업적 신화, 민중을 우롱하는 신화, 조작된 신화는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신화는 소박하고 진실한 토대 위에 자리 잡아야 한다. 황제는 자신의 신화를 가졌고, 그것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 지점에서 그의 신화는 단순한 허구로만 치부되기 어렵다.
득도한 황제
황제는 노년에 이르러 죽음을 앞두고서야 진정한 의미의 황제로 즉위한다. 그의 마지막 등극은 정치적 성공이라기보다, 득도를 통해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에 가깝다. 그는 무위의 도(道)를 깨닫고, 혼탁한 세상의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가 아니라 드넓은 우주를 품는 황제로 나아간다. 그는 황제로서의 몫을 다했다.
황제는 자신의 영달을 위한 황제되기를 거부했고, 백성을 인(仁)과 덕(德)으로 다스리려 애썼다. 아무리 스스로를 황제라 외친다 한들, 황제가 갖추어야 할 인격과 품격이 없다면 그는 이미 황제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말한다. 누구나 황제를 자처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황제가 될 수는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