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7. 00:03ㆍ영화평
탈레반이 여성 교육 반대하는 진짜 이유
'탈레반'(Taliban: 파슈툰어 '학생'이란 )은 아프가니스탄의 극단주의 무장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소련 침공에 맞서 싸운 무자헤딘(아프간 무장 게릴라) 출신의 무하마드 오마르(Muhammad Omar 1950/62-2013)가 아프간 내전 시기인 1994년에 칸다하르 부근 마을에서 민병대를 조직한 데서 출발하였습니다. 탈레반은 대중의 큰 지지를 받아 1996년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장악하였고 오마르는 아프간 최초 이슬람 토후국을 세워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국가 건설과 샤리아법 시행을 목표"로 내세우며 2001년 미국의 침공 때까지 통치하였습니다. 샤리아법은 꾸란과 무함마드의 가르침인 하디스에 기초한 이슬람의 율법입니다.
탈레반은 '샤리아법 시행'을 목표로 한다면서도 여성 교육에 대해선 샤리아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하마드는 그의 언행록(하디스)에서 "지식을 찾는 것은 모든 무슬림(남자와 여자)에게 의무사항"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밤에 한 시간 동안 동료들과 함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밤새껏 기도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꾸란에서도 "그(알라 신)는 누구에게나 마음에 합당한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 지혜를 얻는 자는 참 좋은 것을 얻은 것이다"(암소의 장 2:269)라며 성별 구분 없이 '지혜' 얻는 일을 장려합니다.
샤리아법을 헌법으로까지 규정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는 샤리아법에 따라 고등교육과 대학 진학 등 여성들의 교육을 허용합니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서 여성들은 사적인 영역인 가정에 머물러야지 교육을 포함해 공적 영역에서 활동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그들은 여성들의 교육은 '서구의 강요'이고 '아프칸 문화와 가치에 대한 위협'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여성 교육을 반대하는 속내는 딴 데 있습니다. 여성들이 많이 교육받으면 비판적인 사고를 하게 되어 탈레반의 극단주의적 이념에 대해 의문을 품고 이의제기를 할 것이고 그러면 자신들의 권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암살 위협에 굴함 없는 여성 시장
다큐 <인 허 핸즈>(2022년, 감독: 타마나 아야지, 마르셀 메텔지펜)는 2022년 2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탈레반이 평화조약 체결하고 미군과 연합군이 아프간에서 떠난 2021년 8월 전후 아프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조명합니다. 특히 아프칸 여권 신장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자리파 가파리 전 시장(1994~)의 활동을 중심으로 아프간이 처한 암담한 상황을 알려 줍니다. 비록 가파리가 주인공이긴 하나, 이 다큐는 그의 시각과 주장만 일방적으로 전달하진 않습니다. 탈레반 주둔지를 넘나들며 탈레반 사령관이나 전사들, 그곳 아이들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자리파 가파리는 2019년 11월 24세 나이로 아프칸의 와르닥(Wardak) 주의 수도 마이단 샤하르(Maidan Shahr)의 시장에 임명된 여성입니다. 아프간 최초 여성 시장은 아니고 가파리 말고도 다른 여성 시장들(자라 자파리아, 카하드자 아마디)은 이미 이었습니다. 하지만 가파리는 최연소 여성시장이자 탈레반 지지세가 높은 지역의 여성 시장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더욱이 거듭되는 암살 시도에도 굴함 없이 여성들의 교육을 신장시키는데 공헌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가파리 민주적 투표로 시장에 선출된 건 아닙니다. 그는 장학금을 받아 인도 찬디가르 펀자브대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한 뒤 귀국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을 거쳐 시장에 임명되었습니다. 탈레반 통치 시기, 그의 부모는 딸 가파리를 비밀학교에 보내 교육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여학교들에 대한 자살 폭탄 테러가 이어지자 큰 딸 가파리가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의 학업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꺾지는 못했나 봅니다.
가파리의 부친 압둘 와시 가파리는 국방부 공습부대 사령관입니다. 이 다큐에선 가파리가 부친과 통화하며 의견 충돌로 언쟁하는 장면이 잠시 나옵니다. 그의 진보적인 활동에 대해 부친은 늘 신변의 위험을 걱정하며 말렸던 거 같습니다. 가파리는 부친마저 고정관념에 매여 자신을 잘 이해해 주지 못한다며 답답해 눈물짓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탈레반은 가파리 부친을 2020년 11월 5일 카블의 자택 앞에서 암살하고 맙니다. 가파리를 죽이는 대신 그의 부친을 암살한 것입니다.
가파리는 미군이 떠나고 탈레반이 수도 카블을 장악하였을 때까지 버티다가 극적으로 아프간을 탈출해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망명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프간 여성들이 여성 교육을 허용하라며 용감하게 거리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조국 아프간임을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처형당할지 모를 아프간으로 되돌아가 언론 인터뷰로 "탈레반이 여성들 지지를 얻으려면 더 이상 여성들을 억압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정말 용감한 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현 아프간 상황에 무거운 책임져야
아프간 여성들은 단지 '교육'을 받고자 목숨 걸고 학교에 가야 합니다. 다큐에서는 소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폭탄 테러가 발생해 여학생 여럿이 병원에 실려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탈레반의 여성 혐오와 인권 탄압이 얼마나 극심한지 잘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탈레반 정권은 여성 교육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하고선 정작 학교는 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TV, 스마트폰 사용, 오락도 금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국민들이 정보를 얻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통치를 더욱 굳건하게 하려는 의도일 겁니다.
이 같은 사태가 곧 벌어지리라는 사실은 불보듯 훤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미군과 연합군은 무책임하게 아프간을 훌쩍 떠났습니다. 2020년 2월 트럼프와 탈레반의 평화협정 체결되자, 가파리는 "미국인들이 소수 탈레반 제거를 위해 아프간 전체 마을을 파괴하더니 이 거래로 그들이 '내 나라를 팔았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프칸 여성들은 20년 간 전쟁에 시달리며 탈레반의 억압 통치에서 벗어나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옛 암흑 시절로 되돌아가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상태입니다. UN 평화 유지군은 바로 이런 때에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프간 여성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을 쑥대밭으로 만든 미국은 지금 아프간 상황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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