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고픈 골고다 '십자가 사건'

2021. 5. 14. 12:17성서화 감상

에드워드 뭉크, 골고다(1900년)

 

https://www.gyeoja.kr/news/articleView.html?idxno=167

 

'절규'를 그린 뭉크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노르웨이 출신 화가입니다. 고흐와 함께 현대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절규'(1895년)라는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이지요. 뭉크의 작품 '절규'는 지난 2012년 미국 뉴욕의 한 경매장에서 무려 1억 1,992만 2,500달러(한화 약 1355억)에 팔려나갔답니다. 이 작품은 그림값만 비싼 게 아니라 '세기의 걸작'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를 상징적으로 잘 그려냈다고 보기 때문일 겁니다.

작품 '절규'를 보면 노을로 붉게 물든 해변 길을 걷던 한 사람이 깜짝 놀라 동그란 눈을 하고 두 손으론 양쪽 귀를 감싼 채 비명을 지르는 모습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노을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경탄하는데 뭉크는 어찌하여 마치 세상이 다 끝난 듯이 '절규'하는 그림을 그렸을까요? 그는 혹시 노을을 핵폭탄 투하의 섬광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요? 지난 20세기는 1, 2차 세계대전으로 숱한 사람이 죽고 인류가 처음으로 원자폭탄의 참상을 경험한 광기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뭉크의 '절규'는 더 주목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뭉크는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어머니가 결핵에 걸려 사망한 겁니다. 어머니 대신 누나가 뭉크를 잘 돌봐주었으나 열네 살 때 그 누나마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뭉크의 여동생은 정신병에 걸려 정신병원에 들어갔고 군의관이던 아버지는 '광기'에 가까운 '지독한 신경과민' 증상을 보였습니다. 이런 불행하고 우울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뭉크는 일생을 정신적 불안과 죽음의 공포, 여성 혐오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들에는 뭉크의 불안에 시달리는 어두운 내면이 묻어납니다.

 

 

 외면하는 십자가


작품 '골고다'는 벌거벗고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내를 그려 놓았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라 보기에는 너무 현대적인 머리카락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단발머리에 수염도 없습니다. 더구나 십자가에 달리고도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는 듯이 평온한 표정입니다. '골고다' 예수를 그린 거라면 양옆에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두 사람도 있을 법하건만 웬일인지 그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편의상 그를 '예수'라 합시다.

십자가 밑에는 군중이 있는데 그들 다수는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정면으로 보지 않습니다. 애써 외면하는 모습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인지 아니면 여제자 막달라 마리아를 묘사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한 여인은 반쯤 고개를 돌린 채 눈물을 쏟고 있습니다. 그 여인이 어깨에 손 얹은 한 남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있고, 그 옆 사람은 즐거운 듯 웃습니다.

로마 병사를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자들은 유대 집권자들, 아마도 율법 학자, 제사장 같은 자들로 보이는 데 그들은 기분 좋게 웃는 표정이고 수염 많이 난 한 사람(이 사람도 율법 학자쯤으로 보입니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나머지 십자가 밑 군중 좌우의 가장자리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향해 손가락질해 대며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모습입니다.

 

 

벌거벗은 예수


이 그림이 묘사한 예수는 천 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입니다. 많은 화가가 골고다 예수를 속옷을 입힌 상태로 그렸습니다. 불경스레 예수의 음경이 드러난 그림을 차마 그릴 수 없어서였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복음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벌거벗은 상태였음을 증언합니다(마 27:35; 막 15:24; 요 19:23~24). 십자가 처형 자체가 큰 수치심과 고통, 공포를 주기 위한 사형이었습니다. 뭉크는 복음서 증언에 충실하여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과감히 나체로 묘사한 거로 보입니다.

십자가의 예수 머리 위로는 하늘에서 커다란 손이 뻗어 있습니다. 예수나 군중을 향해 뻗은 손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왼쪽 끝 부위 키 큰 나무를 향해 뻗은 손입니다. 하지만 이 손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하나님의 손길을 상징하는 거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라'고 손을 내밀지만, 사람들은 외면하거나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을 되레 규탄하는 거 같습니다.

뭉크가 이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그 사건을 외면하거나 비웃고 있음을 말하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조차 사람들의 이런 반응을 보고 당황스러워 할 말을 잃고 놀란 표정 같아 보입니다.

반응형

'성서화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펀한 일상 속의 신앙  (0) 2023.04.12
독수리 날개를 편 예수  (2) 2023.03.08
신화적인, 너무 신화적인 아담 창조  (0) 2023.02.15
손 다친 소년 예수  (0) 2021.06.09
낙원에 간 강도  (0) 202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