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무원의 실언과 내란 사태, 그 뿌리는?
'부정선거 음모론' 이대로 방치하면 나라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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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사법부 다 없애야 한다는 공무원
지난달 3일, 보호외국인을 면회하러 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를 방문했습니다. 면회 절차를 밟는 동안 한 직원과 보호외국인 면회 관련 이야기를 잠깐 나눴습니다. 그 직원은 제가 이따금 면회를 다니기에 자연스레 낯익은 분입니다.
동사무소에 가시면 직원과 민원인 사이에 투명 아크릴 가림막이 설치돼 있습니다. 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도 비슷합니다. 민원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앉은 책상과 민원인 사이는 투명 아크릴 가림막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직원이 갑자기 내 곁으로 뛰쳐나오더니 “이 나라는 큰일이다, 선관위와 사법부가 너무 문제가 많다. 다 없애야 한다. 미국 트럼프도 지난 대선에서 부정선거 감시하느라 전국에 사람들을 많이 보냈다” 이런 말로 열변을 토하더니만 제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그는 머쓱해졌는지 자신의 책상으로 다시 가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저는 “별 희한한 공무원이 다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그날 보호외국인 면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이 맡은 민원 업무와 전혀 상관없음은 물론이고, 제가 관련 이야기를 꺼낸 적도 없는데 뜬금없이 그가 내 곁에 뛰쳐나와 쏟아낸 그의 말들이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저를 비롯한 온 국민은 ‘비상계엄’이라는 훨씬 더 충격적인 발표를 들었습니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아닌 밤에 홍두깨’라더니, 이 나라가 하급 공무원부터 대통령까지 미쳐 돌아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제59조)하게 돼 있습니다. 종교 중립의 의무(제59조), 품위 유지의 의무(제63조)도 지닙니다. 이런 규정을 아는 저로서는 앞서 언급한 직원의 언행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법무부 소속 국가공무원이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와 사법부를 다 없애야 한다”는 말을 하다니요! 그것도 업무시간에 민원인이 묻지도 않은 그런 말을 큰소리로 열변을 토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불법 비상계엄과 부정선거 음모론의 확산
하긴 국민들이 잠자리에 들 무렵,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총기로 중무장한 계엄군을 국회와 선관위에 보내 난장판을 만든 대통령에 비하면 이 공무원의 실언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한다”는 내용의 ‘선서’를 합니다. 또한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1공무원이기도 합니다.
이런 대통령이 ‘헌법’을 어기고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헌법은 “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제77조). 지난달 12월 3일은 이 같은 비상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또한 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대로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통고해야 할 사항도 어긴 채 불법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수백 명 계엄군을 동원해 헌법기관을 침탈하는 만행마저 저질러 ‘내란 수괴’로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처지입니다.
도대체 이 모든 사태는 왜 발생하였을까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명분은 '반국가세력 척결'과 ‘부정선거’ 의혹을 바로잡겠다는 거였습니다. 앞서 말한 공무원이 “선관위, 사법부 다 없애야 한다” 소리친 일도 그 기저에는 ‘부정선거 의혹’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인터넷과 유튜브에 널리 퍼진 “지난 21대, 22대 총선은 다 부정선거”라 주장하는 음모론을 철석같이 믿었나 봅니다.
두 차례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자, 도무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솔깃한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중에는 황교안 전 총리나 민경욱 전 국회의원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도 후보 시절인 2022년 3월 4일 “4.15 총선 때 사전선거가 좀 부정의혹을 걱정하시는 거 알고 있다”며, “부정선거를 만약에 획책한다면 이 나라에서 살 수 없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 적 있습니다.

부정선거 의혹, 적극적 대응 필요
일부 유튜버들이 퍼뜨리던 ‘부정선거 음모론’에 숱한 보수 우파 성향 사람들이 빠져들었고 급기야 ‘내란 사태’까지 낳은 것입니다. 공직선거는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를 이끌 일꾼을 뽑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떠한 부정 의혹도 없이 공명정대하게 치러야 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를 위해 노력하는 기관이지만, 지금의 내란 사태를 보면 그 대응이 크게 모자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민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그것을 검증하여 사실 여부를 밝혀줘야 하는 게 선관위의 고유한 책무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선관위의 대응을 보면 관련 보도 자료를 내거나 개표시연회, 또는 안내 영상을 통한 해명이 고작입니다. 이 정도로는 독버섯처럼 급속히 번지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핵심 인물들을 불러 전문가들과 함께 간담회, 토론회도 열고 이를 생중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가짜뉴스에 속지 않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언론도 인터넷상에 번지는 부정선거 의혹들에 대해 철저히 검증 보도하여 시민들이 거짓에 현혹되어 휘둘리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숱한 사람을 미치게하고 더 나아가 나라를 망가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