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화 감상

평범하다 못해 알아보기도 힘든 예수 얼굴

솔샘인 2024. 7. 3. 23:06

그리스도의 배신/(1568) 야코포 바사노(Jacopo Bassano, 1533~1590)

 

   화가 지오토( Giotto 1267~1337)는 '배신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입맞춤을 하는 순간을 그렸습니다. '유다의 입맞춤'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지요. 바사노도 예수님이 올리브 산에서 잡히시는 장면을 작품으로 남겼습니다. 그의 그림에도 가룟 유다가 등장해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지오토 작품에서는 유다가 예수님께 입맞춤하는 모습이 담겨 있지만, 바사노 그림의 유다는 아직 입을 맞추지는 않습니다. 유다는 왼손으로 예수님의 가슴 부위를 살짝 잡고 예수님께 입을 맞추려고 다가서는 중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몹시 근심 어린 표정입니다. 예수님께 입맞춤을 하려 다가서긴 하였으나 잠시 엉거주춤하는 모양새입니다. 유다가 붙들고 있는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기꺼이 자신을 유다에게 내 맡기십니다. 한편 오른쪽에 보이는 흰머리와 수염의 인물은 허리를 굽힌 상태로 자신 앞에 꿇어앉은 한 여인을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가려 하나 봅니다. 아마 시몬 베드로와 요한을 그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포기한 채 어둠을 틈타 속히 도망칠 기세입니다. 

 

지오토는 '유다의 입맞춤'에서 예수님 머리 둘레에 노란 후광을 둘러 놓았습니다. 반면 바사노의 작품에 나오는 예수님에게는 화려한 후광이 없습니다. 정수리 위쪽에 흰 광선이 살짝 보이긴 하나 지오토가 묘사한 후광에 비할 정도는 아닙니다. 후광을 의도한 빛으로 보이긴 하나 지오토가 묘사한 후광에 비해 미미한 수준입니다. 더욱이 바사노 작품 속 예수님 얼굴은 이목구비가 선명하지 않습니다. 얼굴 형체가 흐릿해 잘 알아보기조차 힘듭니다. 배경이 밤이라 그러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 주변의 다른 인물들 얼굴도 흐릿해 알아보기 힘든 상태인 건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에 비해 가룟 유다의 얼굴을 더 선명하게 그렸음을 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묘사임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오른쪽 귀만 정면에 보이고 나머지 옆 모습의 눈과 코, 입은 뭉그러져 잘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바사노는 예수님 얼굴을 왜 이렇게 모호하게 그렸을까요? 더욱이 예수님은 가룟 유다보다 키가 작습니다. 몸을 약간 뒤튼 상태라 그럴지 모르나 예수님의 키는 유다의 이마에 이를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 그린 성서화치고 매우 과감한 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중세 기독교 국가의 화가 중에 감히 어느 누가 예수님 외모를 이처럼 소박하다 못해 평범하게, 아니 못생기게 그린다 말입니까? 

 

화가 바사노는 과감히 그런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의 다른 성서화를 보면 이 작품처럼 흐릿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풍부한 색감과 선명도를 보여주며 생생히 묘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배신'이란 작품처럼 사람 얼굴이 그리 선명하지 않는 작품은 찾기 어렵습니다. 특히 예수님 얼굴을 흐릿하고 모호한 형태로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바사노는 어째서 그의 작품 '그리스도의 배신'에서 예수님 얼굴을 이처럼 허술하게 그렸을까요? 

 

그는 복음서 내용에 충실하고자 그랬을 겁니다. 마가복음은 유다가 "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아서 단단히 끌고 가시오"(막 14:44)라고 군병들과 신호를 짰다고 알려줍니다. 예수님을 붙잡아 끌고 가고자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병사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잘 몰라서 그랬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만일 예수님 얼굴이 두드러지게 잘 생겼거나 옷차림이 다른 제자들과 뚜렷이 구분 가능하였다면 유다와 군병들은 굳이 신호를 짤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들이 '입맞춤'이란 '신호'를 짜서 유다를 앞세워 예수님 체포에 나선 까닭은 예수님이 제자들 속에 계시면 구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겁니다. 유다가 "바로 이 사람이요"라는 신호로 스승 예수님과 입맞춤을 해서 지목해야 비로소 군병들이 그분이 누군지 알 수 있었습니다. 바사노가 예수님 얼굴을 흐릿하고 모호하게 그린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일찌기 이사야는 고난의 메시아 예언에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사 53:2)고 하였습니다. 이 예언처럼 예수님은 눈에 띄게 잘 생긴 얼굴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다른 사람에 비해 도드라지게 잘 생겼거나 뚜렷한 특징이 있었다면 복음서 저자들이 침묵하였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네 복음서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외모를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얼굴과 옷차림은 변변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화가 바사노는 이 같은 사실에 착안하여 '그리스도의 배신'이란 작품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게 그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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