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냥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저께부터 끼웅~끼웅~ 무슨 가느다란 신음이 들렸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소리는 잦아들어 대체 누가 내는 소리인 끝내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제 아침에도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새가 지붕 어디에 새끼를 낳은 줄 알았습니다.
오늘 아침에야 그 소리를 낸 게 누군지 찾았습니다. 닭 모이를 주러 닭장에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데크에 새끼 고양이들이 보였습니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네 마리였습니다. 어미는 그동안 정원에 자주 드나들던 길고양이입니다.
올해 초부터 닭 모이를 주면서 흰 길고양이(아래 '흰냥이')를 위해 밥을 함께 주곤 하였습니다. 흰냥이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찾아오더니 근래에는 거의 날마다 왔습니다. 처음에는 밥만 먹고는 사라지더니 차츰 나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풀려 1M 가까이 다가서도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은 우리 집 데크에서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흰냥이 밥을 주면서도 그가 임신한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흰냥이는 유난히 "야옹~야옹~" 소릴 자주 내는 편입니다. 얼룩무늬 길고양(얼룩냥이)이 한 마리도 가끔 오지만, 녀석은 사람을 보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다가 휙 달아나곤 합니다. 어느 날 흰냥이와 얼룩냥이가 먹이통 앞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서로 누가 목소리 큰지 시합이라도 하듯 소릴 질러댔습니다. "내 먹이 탐내지 마!"라고 말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거 같았습니다. 그 뒤에도 한 차례 두 고양이는 아옹다옹 심한 언쟁을 벌였습니다.
흰냥이 얼룩냥이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흰냥이가 사람만 보면 자꾸 '야옹야옹' 하는 걸 보면 암컷이 아닐까 막연히 추측하였을 뿐입니다. 두 고양이는 먹이와 영역 다툼을 벌이느라 사이가 몹시 안 좋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하루는 두 고양이가 사이좋게 함께 오는 거였습니다. 그들은 먹이를 함께 먹고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둘이 친구가 되었나 보다, 이렇게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너무 무심하였습니다. 흰냥이 배가 통통하게 불러온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 겁니다. 그저 몸에 살이 많이 찐 줄로만 알았습니다. 엊그제부터 흰냥이는 몰라보게 홀쭉이가 되었습니다. 며칠 사이 살 빼기를 한 게 아니라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태어난 고양이 새끼들은 불과 나흘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도 꽤 커 보였습니다. 흰냥이가 새끼를 다른 데서 낳아 기르다가 데려온 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끼들은 어미 곁에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어른 주먹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작은 틈새인 데크 밑에 잽싸게 들어가 숨었습니다.
흰냥이의 앙증맞은 새끼들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번식을 한다면 머지않아 우리 마을이 '고양이 마을'이 되고 말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였습니다.
새끼 고양이들을 어디에 분양 보낼 데가 있을까 알아보았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여수시가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소'에 연락해 보았습니다. 담당 직원은 "길고양이는 '야생동물'로 보기에 보호하지 않는다. 길고양이가 낳은 뒤 어미가 유기한 새끼들은 한 주일가량 보호하지만 대부분 금방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길고양이를 신고하면 포획해서 중성화 수술을 한 뒤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지만 그것도 신청이 쇄도해 금방 마감된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차라리 어미 흰냥이가 그대로 키우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새끼를 분양받을 사람이 나타나면 포획해서 보내든지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요즘에는 애완묘가 사람 못지 않는 귀한 대접을 받는데 길고양이들은 새끼를 낳아도 축하는커녕 천더꾸러기 신세인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